기다림
정적이지만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만나서 덕담을 나눴다.
그런 중에 “임기 오년이 너무 길다”는 얘기도 나왔다.
힘든 일이 많았으니까, 기질이 쌈꾼이지만 싸우는 게 좋기만 했겠는가?
그래도 그에게는 괜찮은 날들이었으리라.
누가 그랬다.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느립니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깁니다.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짧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합니다.
광음여류(光陰如流)라고 하지만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는 꼭 탄식만은 아니리라.
좋은 시절이었다는 얘기.
괴로웠으면 길게 느껴졌을 테니까.
하긴 마지막 몇 해 출입이 자유롭지 않고 늘 아파하시던 아버님은
“일 년은 짧은데 하루는 너무 길어” 그러셨더랬지.
이룬 게 없어 짧게 여겨지기도 하겠으나
시간을 더 주어도 달라질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뭘 쌓아둔 게 보여야 이룬 건 아니니까.
먹는 게 남는 거라지만
먹은 게 노적가리로 남는 건 아니거든.
싸서 빠진 것 말고도 피가 되고 살이 되고 힘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한 말 다 잊어버렸어도 음파는 은하계 구석까지 퍼져나갈 것이고
이름 알려지지 않고 영향력 없다 하지만
사랑했고 울고 울렸고 웃기기도 했거든.
그 마음의 주름살 바람결로 다 사라졌지만
무슨 기운으로 재구성될지 누가 알아.
물이 물 되어 돌아오던 걸.
{그때 그 자리에 같이 있던 것들이 모여야 하는 건 아니니까.}
뭘 기다리는 걸까?
봄?
오늘이 올날인데 이미 봄 아닌가?
날마다 죽는데 다 두려울 것도 없고
영생을 맛본다(foretaste)는 말도 있던 걸.
기다리는 것이나 두려워하는 것이나
올 것은 와 있으니까
‘이미 있는’ 걸 ‘아직 아니’라 할 게 아니고
같이 가는 것이다.
즐거워서가 아니라도 즐기는(享受) 것이다.
기다림은 오지 않은 미래(未來, futurum, Futur)로 끌려감이 아니라
다가오는 내림(降臨, adventus, Zukunft)을 맞이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