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맞이
1
설이라고 제 집 찾아가는 이들
빨리 가는 마음을 발길이 따르지 못할 것이다.
또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겠는가.
가지 않아 편하다는 사람이 갈 수 없어 서러운 사람보다 더 낫지도 않을 텐데?
한국에서 아내와 함께 과세하기는 처음이다.
딸은 네 살 때 한국에 와본 적이 있고 이십육 년이 지나서 다시 들렸다.
한 주일 휴가를 받아 닷새를 ‘꿈같이’ 보내며
그새 할아버지 산소에 들리고 외가 할머니들의 서북 사투리 듣다가 어제 떠났다.
돌도 되지 않아 기억도 없이 다녀간 적이 있는 아들들도 한번 다녀가면 좋겠다.
큰 집은 아직도 가족들이 모여 만두도 빚고 그러리라.
육남매가 같이 자랐고
큰댁이 있어도 ‘남자’가 있는 집안으로는 우리뿐이었는데도
명절 기분을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었다.
가정을 가지고는 줄곧 외국에서 살았고.
만두 몇 개를 사가지고 왔더니
어른 간병하던 부인이 만두와 김치를 가지고 들렸고
그래도 형수가 와 있다고 바쁜 아우가 만두와 고기를 들고 왔다.
어쩌다가 냉장고가 차고 넘치기도 하는구나.
블로그 이웃에게서 빌려온 사진. 부러운 마음으로...
2
다들 뭔가 바란다.
밑바닥 바람은 복은 넝쿨 채 쏟아져 들어오고 재앙은 피해가라는 것이겠다.
다들 새 부적으로 바꾼다(“總把新桃換舊符”, 王安石의 ‘元日’ 중)고 그러지 않던가.
도깨비들이 눈이 멀어선지 술에 취해선지 들릴 데, 까불 데, 피할 데를 헤아리지 못해서...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롱펠로, ‘인생 찬가’)이라고 그러는데
그게...
요람에서 떨어트린 요령이 내는 소리조차 은하계의 끝까지 진동으로 퍼져나간다지만...
난 뭐 영향력이 없어 서운하거나 족적이 사라질까 두렵지는 않다.
서산대사 그런 말씀 남기셨다.
눈밭 밟으며 갈 때에도
어지러운 걸음하지 않을 것이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뒤따르는 이들에게는 길이 될 것이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저 살자고 헤매던 걸음이 반듯했겠는가?
따라오겠다는 사람은 있을는지?
예술은 만들기(making)이고 과학은 찾아내기(finding out)이겠는데
길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찾아지는 것일까?
좋은 말씀 비틀 이유 없지만
눈 더 내리거나 바람이 몰고 와 덮기도 해서
발자국은 이내 사라질 것이고
아직 흔적 남았다 해서
그대로 따라갈 것도 아니니까
그저 제 길 제가 지어가는 것이다.
복도 제가 짓는 것이지
굴러들어오거나 얻는 게 아니다.
그렇더라도...
‘立春大吉’이라 써 붙인 게 뭐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직 춥지만 ‘春節’이라는데
그리고 立春도 지나지 않았는가.
天增歲月人增壽 春滿乾坤福滿家
집집마다 거리마다 봄기운 가득하기를.
그러고 보니 매화 필 때 되었는가?
揮毫落紙墨痕新 幾點梅花最何人 願借天風吹得遠 家家門巷盡成春
-이방응(李方膺), ‘매화 그림에 붙인 글(題畵梅)’-
아직 피지 않았으면 어때
마음에 먼저 피고 붓이 급하게 따라가거늘.
천만 개 꽃 다 피었다고 해서
마음에 닿는 것은 두세 가지뿐이고
온 세상에 꽃비 내리는 것 같아도
그 한 방울에 목메게 되던 걸.
寫梅未必合時宜 莫怪花前落墨遲 觸目橫斜千萬朶 賞心只有兩三枝
그렇게 그리움은 그림 되어 남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