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기행 2

 

긴 연휴가 끝나고 출근하는 직원들이 남대문을 화제로 올려 이야기하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었다.

왜란, 호란, 일정, 6.25를 지나면서도 멀쩡했던 것이 그렇게 맥없이 사라져버리다니...

왜 ‘국보 1호’가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보물이라면 그렇게 방치해도 되는 건지?

지킬 의지도 없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미 이루어진 ‘관계’로 그냥 남은 법률상 부부처럼 그렇게 거북하다가

차라리 잘된 건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아름답다’고 그러던 그 미남 아저씨가 수장으로 있는 동안

낙산사 홀랑 타버린 게 모자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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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일 전에 남대문시장 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진혼무를 춘 이도 있고 여럿이 일부러 찾아가 헌화하거나 눈물 흘렸다고 한다.

사무실이 청파동이니 슬슬 걸어가 봐도 될 거리에 있지만

유족도 아니고 검시를 할 것도 아닌데 왜 지켜봐야 하는지...

울적한 마음 달랠 길 없어 휙 나선 걸음이 반도를 횡단하게 되었다.

{종주 안 해, 대운하 답사하는 것 같아서.}

 

기상청은 지난 주말 강원/영동에 폭설주의보를 발했으나

또 헛다리짚은 건지 개다리춤이었는지 눈 내렸던 흔적이 없다.

홍천 지날 때까지 산허리도 중늙은이 새치마냥 희끗한 정도더니

인제쯤 가니까 산마루가 허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는 그냥 진부령 넘어야만 가는 줄 알았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는

타령{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중}도 있었고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라는 창가도 있고 보니

아 또 있다, “초연히 살려 할 적마다/ 바람에 휩쓸린다.”고...

해서 오가는 길 하나뿐이 아닌 줄 짐작했지만

이렇게 와보기는 처음이구나.

냉장고만한 무전기 들고 교통 통제하는 헌병들에게 담뱃값이라도 쥐어줘야

일방통행으로나 가능했던 고갯길에서 해 넘어가도록 기다리지 않던 시절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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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큼 대단한 건 아니지만

고갯길이라면 다 그렇지

꼬불꼬불, 그리고 고개 너머 또 고개.

해서 그랬던 거다.

    “꼬불꼬불 첫째 고개/ 첫사랑을 못 잊어서 울고 넘는 아리랑 고개/

     꼬불꼬불 둘째 고개/ 둘도 없는 임을 만나 두리둥실 넘는 고개/

     꼬불꼬불 셋째 고개/ 셋방살이 삼 년 만에 보따리 싸서 넘는 고개/

     꼬불꼬불 넷째 고개/ 네가 네가 내 간장을 스리살살 다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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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은 아니고 그래도 이름이 있는데

‘미시령 큰 바람’이라 하지 않던가?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를 부르며 마루턱에 서 있는 동안

잠깐 챙겨주지 않은 사람이 바람에 넘어졌다.

{바람에 날려갈 체중이 아닌데도.}

 

     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

     바람이 되어 흔들리고

     설악산이 흔들리고

     내 등뼈가 흔들리고

     나는 나를 놓칠까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

 

       (황동규, ‘미시령 큰 바람’ 부분)

 

그 바람이 이 바람이겠냐만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서정주, ‘자화상’ 중}라는 말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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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캄캄해지기 전에 거진 항까지 가자고 내달렸다.

거기 뭐가 있다고 떠날 때부터 줄곧 목표삼고 왔는지

와보니 그 옛날 일몰 후 모래밭에 나갔다가 탐조등 불빛을 받으며 총알받이가 될 뻔했던

그 한적하면서 삼엄하기도 했던 해변은 없었다.

관광객들에게 건어물을 파는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섰는가 하면

몇 층인지 까마득히 올린 리조트 콘도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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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에 눌러둔 나뭇잎들을 찾아내서 뭐 하게?

그나마 원형보존이 가능했던 것들도 들추어내는 동안 부스러질 것이다.

 

그리운 것은 다 앞에 있거든.

그 숲에 다시 가도 찾을 게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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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고 자고 싶지만

너무 허기지면 잠도 안 오니까...

속초 등대 있는 데로 나가 ‘이모 집’인가에서 먹은 생선찜은 정말 괜찮더라.

 

대신 예약해준 사람만 믿고 찾아간 설악동의 숙소

문 앞에 사진 걸린 걸보니 최수종/ 하희라 테마 방이라나.

자고 깨어보니 창문에 진경산수화 병풍이 걸쳐있다.

권금성이 방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 그림 한 장으로 모두 보상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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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입장료 따로 받지 않는다는데

그런 데마다 도리 없이 사찰 경내를 슬쩍 건드리고 지나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기에

녹림도들이 통행세 징수하듯 사찰에서 길 막고 거두어들이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신경 끄자고 하면서도 ‘사찰’입장료를 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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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대 쪽은 올라가는 길이 막혔고 울산바위 향하여 조금 가다가

아파트단지 내 공원에서 산책하듯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만 두기로.

보면 됐다. 눈 만지고 밟아봤으면 됐지.

{설악산이 난생 처음인 사람과 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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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점봉산 산채’에서 들었다.

돌버섯, 흐르레기, 표고, 송이 등 버섯만 해도 몇 개 되는데다가

나물이야 어찌 다 기억하겠는가, 도둑취, 곤드레, 고비, 우산나물, 다래순, 더덕,

헛개나무 열매 등 불로초 잎에 싸서 들고

식전에 솔잎차, 식후에는 당귀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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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서해처럼 비릿한 개펄 내가 안개에 담겨 다가오는 게 아니고

동해는 멀리서 바라만보라고 내빼는 이 같다.

모르는 채로 남겨두자고

그래서 더욱 도지는 그리움처럼

동해는 섞이지 않아 해결할 길 없는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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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장 들려 젓갈 좀 샀다.

돌아오는 길에 멀미하는 촌 아낙이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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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원찮아서... 자는 게 남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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