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1

 

3월 3일, 중삼(重三)이니 삼짇날이니 하는 건 음력으로 치는 건 줄 알지만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라는 노래 부르고 싶은 건

봄처녀 오실 생각도 않는데 마음으로 모셔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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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같은 건지

참말로 지독해서 견디기 어려워도

그거 뭐 그렇게 지나가더라고.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라고 할 말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그러고는 또 오네

간 놈 돌아선 겐지 딴 녀석 나타난 건지.

 

새 흙 퍼와 객토하지 못했는데

봄 되었다고 또 씨앗을 묻어야 하는 건지?

싹이야 나겠지만 얼마나 거두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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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버님, 어머님 생신이 삼월에 들어있다.

다들 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 음력에 익숙하지 않다.

명절, 생신, 기일을 음력으로 치르는 집들이 아직도 많으리라.

어른과 더불어 아기자기한 과거를 만들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누님은

돌아가신지 몇 달 안 되었는데 음력 생신을 놓쳤다고 울었다.

장남이라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혐의를 벗지 못한 나는

무슨 행복한 기억으로 입꼬리 올라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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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은 보름달이었다.

     건넛집 지붕에는 흰 박꽃이

     수없이 펼쳐져 피어 있었다.

     한밤의 달빛이 푸른 아우라로

     박꽃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마디,

     얼마나 또 오래 서로 딴생각을 하며

     박꽃을 보고 꽃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제 들어가 자려무나.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내 아이들은 박꽃이 무엇인지 한번 보지도 못하고

     하나씩 나이 차서 집을 떠났고

     그분의 눈물은 이제야 가슴에 절절이 다가와

     떨어져 있는 것이 하나 외롭지 않고

     내게는 귀하게만 여겨지네.

 

       -마종기, ‘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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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니지만

삼월이면 봄이라는 것

이맘때면 나무에 물오르고 더러 이르게 꽃망울 터뜨리라는 것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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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추울 때 벗어던지고 깡 부리던 겨울나무

따뜻해지자 입고 가릴 준비하겠네.

그러면 더러 찾아올 이들 있겠네.

 

     보고 싶었다,

     너를 보고 싶었다는 말이

     입에 차고 가득차면 문득

     너는 나무 아래서 나를 기다린다

     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풀잎 되어 햇빛 되어 나를 기다린다

 

       -나태주,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부분)-

 

조그만 사랑들

제비꽃으로 피어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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