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것도 없는 한 천재의 긴 생애

 

아팠냐고? 건 아니고,

바빴냐고? 것도 아니고,

하니까 염려 놓으시게.

{안부 나눌 길 없이 블로그 창 하나만으로 들여다보는 분들은 그랬겠네.}

 

고질이 도지긴 했지.

시시, 시들, 시뜻 병 말일세.

멋없고 맛없고 뜻없고 그저 그런-fade (G.)...

그러니 그건 약으로는 안 되고 바람(ruach) 들어 신바람 나야 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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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쯤 태평양 건너가 노동 치면서 번 돈으로 LP 사재기를 해댈 때였는데

하, ‘Angel’ 딱지 붙은 성악 판은 더 구할 게 없는 정도로 미쳤더랬어.

그런 어느 날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모르는 Ervin Nyiregyhazi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실황을 담은 CBS/ Columbia 판이 눈에 띄더라고. 곡목도 오페라 파라프레이즈 몇 개 정도인.

미쳤다고 그랬잖아, 뭔지도 모르고 장바구니에 주워 담았지.

뭐랄까, 우선 녹음이 잘 안 되었고, 절제되지 않은 연주랄까, 그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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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vin Nyiregyhazi (1903-1987)

요즘 더러 그의 이야기들을 하니까 자세한 정보야 검색창 열면 될 것이다.

그는 천재였거든.

모차르트보다도 더 일찍, 그리고 리스트만 못지않은 실력으로 나타났다고.

4살에 작곡, 6살에 자작곡을 포함하여 연주회, 12세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

15세에 리스트 협주곡을 연주했을 때에는 ‘리스트 이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는 소리를 듣고,

16세에 라흐마니노프 대신 무대에 서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하고,

17세에 카네기 홀에서 연주... 우와~ 그렇게 미국에서 한 삼년 날렸더랬다.

그러고는 사라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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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동안 몹쓸 매니저에 걸려서 별의별 재주를 부려가며 돈 버는데 이용당하기도 했지.

서커스에서 같잖은 난곡의 초견 연주, 건반을 천으로 가리고 치기 따위에 끌려 다니고...

 

여자? 아내를 열 명 두었다고 그러대.

정력절륜이나 바람둥이여서가 아니라 돈과 명성을 따라 접근하는 여성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었던 거지.

빨아먹을 게 없다고 판단한 여인들로부터 내침을 당하고...

그러니 지능지수나 감정지수 같은 건 어떻든지 간에 사회성 지수는 수준 미달의 바보였던 셈.

 

스무 살 무렵 무대에서 사라졌고

그 후 40년 동안 제 피아노를 가져본 적이 없다대.

뭘 하고 살았기에?

부두에서 하역 노동자로 벌이를 잇기도 하고

{에휴, 그 말론 브란도 나오는 ‘On the Waterfront’말야, 그런 사람들과 섞여...}

지하철이나 공원 등에서 난장꿀림 하는 노숙자였다고.

손은 어떻게 됐을까? 피아노를 전혀 만져본 적이 없었을까?

{모르긴 하지만 어쩌다가 문 열린 교회당 같은 데 들어가서 슬쩍 건드려보기도 했을 거라.}

 

응? 1973년 5월 6일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교회에서 그가 연주한다는 포스터가 나붙었다고.

말이 안 되는 거지. 뭘 어쩌겠다고?

그게... 왕년에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십년 연상의 여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돈 없이 병들어 죽어가는 그녀에게 청혼하고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니까...

내 고개 흔드는 거 보여? 소리도 나, 절레절레~

그를 기억하는 이들 거의 없을 연주회에 무슨 피아니스트 협회 그 동네 지부장쯤 되는 이가 들렸다가

까무러친 거지. 뭐 이런 게 다 있지???

정신 놓고 듣다가 가만 있자, 이럴 게 아니고... 휴대용 녹음기 On 버튼을 눌렀다고.

그렇게 해서 몇 곡 건진 거라고.

그렇게 해서 나온 판을 내가 첫눈에 찍은 거지. {뭘 모르고.}

{그 후 CD로도 나오고 했다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됐지만.}

 

그리고 또 사라졌어.

아내는 죽고 돈 쓸 일도 없고 돈 벌 필요도 없고, 관심도 부담스러웠던 게지.

나중에 일본에서 두 번인가 연주회를 가진 적이 있어 몇 곡 더 건졌다고 그러대.

 

갈채에 정신없어 방탕하게 산 사람으로는 스키파(Tito Schipa)같은 이도 꼽을 수 있겠는데

{아, 그가 잘 하는 것은 정말 잘 했다.

정말 미성이다.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은 흔들리고~}

그래도 그는 스튜디오 녹음으로 여러 곡들을 남길 수 있었다.

 

그의 유소년시절을 관찰 연구한 ‘음악신동의 심리학’이라는 책까지 나왔고

그를 가리켜 ‘리스트의 화신’이라는 말도 돌아다녔다고 그러지만

당신을 천재라고 그러기에는 증거불충분!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와 동갑이시구려, 그만큼 오래 사셨고...

 

지난 주일에 국학 연구로 학술상을 받으신 은사님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천재’라는 말이 나왔다.

그냥 天才가 아니고 ‘천년에 한번이나 나올 법한’이라면 ‘千才’로 표기해야 한다고.

 

그게... 업적이 있어야 되는 걸까?

인정받기를 원치 않으면 ‘천재’라는 호칭도 필요 없는 거지만...

 

“시간의 모래밭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바로 뒤따르는 사람에게 “Cul-de-sac’, 그러니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팻말은 붙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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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애가 왜 그렇게 나아갔는지

많이 받은 사람이 많이 내놓지 못하게 된 이유가 뭔지

모르지 뭐.

모를 일 많지 뭐, 투기꾼 사기꾼들이 최고위 지도자가 되는 일들도 그렇고.

다 알 것도 아니고, 그냥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나...

 

에고, 오래 살지라도 말아야 덜 죄송한 건데

“99881234!”로 건배하고들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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