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

시인들에게 영감을 준 구절로 꼽히는 것들 중의 하나인데

“오, 아주 멋져요~” 그러고 지나치지 말고, 그 연결고리에 “응, 왜?” 해본 적 있니?

바람이 분다, 그게 뭐?

살아야겠다, 살고 있으면서 왜?

 

오늘 바람 많이 부네.

기온이 급상승하는 바람에 3월이나 되어 알레르기 시작하는 아내는 벌써부터 눈물 콧물

마른 눈에 바람 들어가서 나도 “아고 쓰려라” 눈물 주르륵.

 

바람 그거 기압의 차이로 공기가 다량 이동하는 거라고 이해하면 재미없지.

 

바람이 분다. 이소라로, 아니면 한영애로? 우예든둥 그건 그냥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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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서시(序詩)’,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것도 그냥 바람.

‘바람이 불어’는? 바람.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얼마 만에 다시 나타났느냐, 김광석? 아니, 떠난 적 없던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래 그건 좀 생각해보자.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너를 생각하고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그러니 바람 맞으며 바람 안고 가는 거네, 힘들지만 이미 빵빵해졌겠네.}

 

 

 

 

 

아, 그리고 ‘서풍부(西風賦, Ode to the West Wind)’

보통 “겨울이 온다 해도 봄이 하마 멀까(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만 아는.

장영희 님이 그만 못해서 함석헌 선생의 옮김을 그대로 남겨두었을까?

그때 그렇게 들어온 Percy Bysshe Shelley-스펠링 참...-를 그만큼 소개하신 게 어딘데.

{블로거 중 기운 있고 시간 있는 분이 전부 옮겨 실리시면 좋겠네.}

 

  (…)오, 나를 일으키려마, 물결처럼, 잎새처럼, 구름처럼!

  (…)우주 사이에 휘날리어 새 생명을 주어라!

  그리하여, 부르는 이 노래의 소리로,

  영원의 풀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이,

  나의 말을 인류 속에 넣어 흩어라!

  내 입술을 빌려 이 잠자는 지구 위에

  예언의 나팔 소리를 외쳐라, 오, 바람아,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바람은 부숨으로써 지키고 없앰으로 낳게 하는 힘.

죽은 잎들을 흩으면서 날개달린(winged) 씨들도 퍼뜨리는데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이 잠자며 숨고르기 하다가 봄이 되면 다 일어서거든.

겨울 이제 시작인데 뭘, 한참 견뎌야겠지.

그래도 봄은 오니까.

 

몰고 온 바람은 쓸어가기도 하니까

바람을 원망할 건 아니네.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고

정인보 선생 노랫말로는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이 아닌 것?

왜 울렸어?

[에 뭐 바람이 그런 거지. 바람 불면 풀이 눕지 어쩌겠나? 그래도 뽑히지 않던 걸.}

김수영 시인이 그러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더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이 바람을 이기는 건 아니지만

바람이 풀을 이긴 것도 아니라고.

그 바람은 소멸되고 풀은 일어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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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고 소리는 나지만, 나는 그것을 바람소리라고 하지 않는다.

 

바람이 소리를 만들었다고

그래서 바람소리?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바람은 뒤집어쓴다, 바람소리라고

 

바람은 공기의 이동이니까

무엇이라 하기는 그렇다

 

느낄 수 있는 것을 두고

없다 할 건 아니다

 

있고 느끼는 것을 두고

이름 붙이는 게 어때서?

 

아침에 솔숲 지나는 소리

저녁에 댓잎 부비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