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결혼식장에 갔다가 선배를 만났다. 캐나다에서 같이 지내다가 못 본지 20년쯤 됐는가.
“나 목사다.”-응? 언제?-로 인사를 시작하는 그 분은 칠순을 바라볼 텐데
그 참... 흰머리나 주름살은커녕 잡티 한 점 없는 홍안으로 나타났다.
흠, 그래도 노인 냄새는 좀 나는구나. {나도 그럴 것이다.}
나는 냄새에 약하다.
긴 여행할 때에는 여객기나 기차의 옆에 누가 앉을는지 늘 조마조마하다.
암내, 당뇨환자의 입내까지 아니더라도 견디기 어려운 냄새들로 인하여
머리가 깨어질듯 아프지만 별 도리 있겠는가
모진 시련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원하며 이를 악물고 참을 뿐이다.
{사는 건 참는 거지 뭐.}
오는 길에 가좌역을 지나게 되었다.
1957년에 남가좌동-그때는 가자울이라고 불렀다-에서 모래내를 건너고 쌍굴을 지나며
철로를 따라 5km를 걸어서 북성국민학교-북아현동 소재-를 다녔더랬다.
그때 일을 생각할 때에 버스 문이 열리고 비린내가 확 다가왔다.
몸뻬에 비늘이 묻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생선장수인 듯,
험한 세월을 살아와서 그렇지 나이는 오히려 내 밑이지 싶은 할줌니가 탔다.
당시 버스에는 7, 8명 탔을까 빈자리가 많았는데...
응? 앗!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 게 아닌가. 아니, 하필...
앉자마자 눈을 감더니 이내 좌우로 몸을 흔든다.
조금씩 몸을 움츠리게 되는데, 그만큼 다른 몸이 기대어 오는 것이었다.
어쩌지? 다른 데로 옮겨 앉을까?
아,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신 사람도 있었거늘...
해서 능동적으로 받쳐주게 되었다.
팔을 둘러 안을 수는 없지만... 속으로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를 부르며.
내릴 데가 되었는데... 잠시 갈등했다.
자세를 바로잡아드리고 나서 몸을 뺄까...
앗! 내려요!!! 세워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미안합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지 않고... 기분 내고 있었나... 라는 야유가 뒤통수로 쏘아짐을 느끼며
떨어질 듯 쫓겨났다.
바쁘지도 않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웬일로 나 말고 둘이 더 타게 되었네.
콧구멍 평수가 넓어졌다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며 코를 감싼다.
조각해서 예쁜 코를 왜 가리는지...
신열까지 있네?
이사하며 가져가지 못할 난분 중에 오늘밤 “이 생명 다하기 전에”로 꽃대 피워 올릴 지원자?
조춘에 탐매행(探梅行)을 빠트리지 않는 얄미운 사람아
암향(暗香)을 한 항아리 담아 택배로 부쳐주지 않으련?
에고, 나는 무슨 냄새 내고 있는지?
내 뒤에 무슨 냄새 남을는지...
사향노루 지나간 풀밭에서 사향 내 난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