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춘(惜春) 1
유고상황은 아니고... 집에 좀 다녀왔네.
봄이 왔다는 감격이 없을 만큼 춥지 않은 곳인데 지난 보름 정도 써늘했다고 그러대.
“梨花에 月白하고” 그러더니만 배꽃 피었을 때에 마침 눈 내렸다더라.
{60년대 한국에 나왔던 하얀 여자 Shirley에게 ‘雪梨’라는 이름을 주었더랬다.}
수선화, 붓꽃 등은 다 가버리고 튤립이 꽃잎 흩어지기 직전에 겨우 인사를 마쳤다.
Carolina Jasmine은 남아 꿀 내를 풍긴다.
심어놓고 떠나 보지 못했던 Lenten Rose가 “나 아주 못 보면 어쩌라고...” 하며 남아있었고.
이 동네엔 산이 없으니
“구름 걷히니 산머리 푸르고(雲捲山頭碧)”로 나가는 글 지을 수 없으나
옅은 구름으로 살짝 가렸는데도 아주 파랗다.
예전에 두루미 서식지였던 곳을 밀어버리고 개발한다고 하여
환경단체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연방정부는 막중한 벌금까지 부과하고 그랬는데
도서관과 노인시설을 짓고 난 후에는 나도 잘 이용하였다.
십오 년을 살던 곳인데
집 지키던 아내가 들어오게 되면 또 가보게 될지...
실은 어디가 집인지 잘 몰라.
{대머리를 놀리는 말에 어디까지가 이마이고 어디서부터 두피냐고 그러면
세수할 때 물 닿는 데까지가 얼굴이라고 하더라마는.}
{다꾸보꾸(石川啄木)가 그랬다던가? “아 집이 있다는 슬픔이여.”}
농경사회에나 집이 있지 다들 유목민이고 사냥꾼이니까...
아니라도, 마음은 집시 집시가 되어 떠나네~ 에고.
막상 떠나자니까
“일 있으면 남을 수도 있겠지...”라고 여운을 남기게 된다.
‘그대 있음에’라는 핑계라도 있다면.
그렇게 우리는 “꼭 그래야 할 것은 아니지만...”이라며
양다리 걸치기로 저울질하다가 결국 밀려난다.
그래도 잔교(棧橋)를 불사른 건 아니니까...
{거봐, 향하여 깔기지도 않겠다는 얘긴 아니잖아.}
옛 벗들 여전하여 섭섭하다고 그냥 보내지 못하고...
와보니 또 그러네?
가도 그렇고
와도 그렇고
다 시시하다는 얘긴 아니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바라보고 그리워할 때가 낫더라는 얘기.}
남녘엔 벌써 지나갔다고 그러더라.
여기서 맞이하면 되지?
사람에 물리고 인파에 치이기 싫다면 꽃놀이 못나갈 거라.
그러고 봄날은 간다.
이제 겨우 개나리 진달래 조금씩 터지던데
목련은 촛대만 가지런히 세우고 아직 불 켜지 않았던데
다 오지도 않은 봄을 두고
“가려면 가려무나” 그러는 건 너무 한 게 아닌지
잡지 못한다고 미리 쫓을 것도 아닌데 말이지.
푸슬푸슬 꽃비 내리고 한참 지나서
어디 틀어박혀 있다가 나왔는지
그때서야 그렇게 가버릴 줄 몰랐다는 표정 짓겠지?
석춘(惜春)? 거 참 우스운 말.
그럴 줄 몰랐던 게 아니잖아?
해마다 그랬는데...
그래도 송한필(宋翰弼) 그는 한많은 사람일 테니...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간밤 비로 꽃 피더니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타 봄일 하나 비바람에 오고가네
그대뿐 아니고 굴원(屈原)뿐 아니고
세상사 다 그러려니 여기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