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춘(惜春) 3
1
봄을 그리고 싶어.
늦은 오후에 기운 해 바라보며 캔버스를 채운 인상파 화가들 참 대단하다 싶지만
신속한 손놀림으로 적확하게 묘사했대도 그렇지
아무리 민첩하기로서니 개화(開花)를 그릴 수는 없거든.
모든 그림은 결국 정물화(still picture)더라고.
목월은 “산수유꽃 노랗게 흐느끼는 봄”이라고 했다.
사랑도 그리고 싶어.
사랑이 아름답던가? Is love a many-splendored thing?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거지
의미 없는 점들을 모은 거라고.
옹졸, 치사한 게 한두 가지 아니더라
질투, 의심, 불필요한 과장, 숱한 거짓말.
그래도 그 점묘에 빛을 쏟아 부으면 그럴싸하던걸.
독점욕 때문에 추해지지 않고 후회로 무효화되지 않는 사랑
흔하지 않지만 없지는 않을 거라?
그릴 수는 없어.
그냥 해보는 수밖에, 할 수 있으면.
2
온 것은 가더라고.
그럼 왔으니 가지, 그게 무슨 문제라고?
가고 또 오는데
간 게 오는 건 아니고
간 건 간 거고 딴 게 오지.
딴 거라도 간 거 같으니까
그려니 여기며
속을 준비 다 되었기에 속는 거지.
자기를 속이고 그렇게 속는 거지.
그게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길들여졌거든.
아 차라리 잃었다면 좋겠다.
간 줄 알았는데 어정거리는 것을 다정유감의 눈으로 잡아두고
선도(鮮度) 떨어진 것을 버리지 못하니
체념과 포기의 수덕(修德)에 진전이 없네.
간밤 비로 강물이 불 정도는 아니지만
촉촉해진 봉오리들 내일 활짝 터치겠네.
{북에서는 꽃 피어남을 터친다고 그런다며? 에고, 수류탄 투척도 아닌데...}
지겠지.
꽃비 내릴 때쯤 세상 끝나는 게 아니고
그때는 또 자작나무 여린 잎들이 반짝이겠지.
그 ‘Becoming Jane’에 나오는 풀밭, Irish Green이라고 부를지
거기 산다는 애 생각하며 Virginia Green이라고 할지
청보리 빛이라기엔 좀 그런
뭐 그쯤 되는 빛들 한참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