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2
아니...?... 그것 참,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출퇴근길에 여의도에서 갈아타기에
어제까지만 해도 꽃구름 같고 솜사탕처럼 펼쳐진 꽃나무들을 볼 수 있었거든.
정신 차리고 돌아보니 다 떨어진 건 아니지만
갑자기 돋아난 잎들이 붙어있는 꽃들을 가리고보니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하게 됐더란 말이지.
즐비하게 깔린 저것들은...
그때는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에 가보지 못한 코흘리개들까지 그런 노래 불렀거든.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여 잘 자라.”
또, 르네상스/ 아폴로 시대에 맴돌던 노래도 있지.
‘몽유병자’에서 아미나의 아리아, Ah! non credea mirati.
꽃들아 너희들은 그리도 빨리 시드는구나
사랑처럼 가버렸구나
단 하루 지속된 그 사랑
말도 안 돼.
꽃 지는 걸 한두 번 봤나... 그래도 그렇지...
어제만 해도 부유(浮遊)하는 꽃잎들처럼 사람들이 몰려다녔는데
뭘 모르고 오는 이들은 이제 볼 게 없겠네?
사랑은 그 날 해야 되는 거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만이 아니고.}
‘영원한 사랑’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이라고 그랬잖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를 따지는 이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거네 뭐.
절정은 지속이 아니라 순간이니까
하루 지나도
아니 일각이 지나도
내리막길이다.
‘다발성(多發性)’이란...흠...
천첩옥산(千疊玉山)의 다른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것이다.
배꽃, 사과꽃, 라일락이 따를 것이다.
벚꽃은 졌다는 얘기.
목련도 해체가 진행 중이다.
붙어있는 꽃잎들을 들여다보니 흠집투성이네?
{그래서 접사(接寫)는 말아야 돼.}
흉보자는 게 아니고 그렇다는 얘기야.
천청만촉(千請萬囑)한다고 들어줄 일이 아니지
시듦을 어찌하랴, 늙음을 막을 수도 없고.
1953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시민 위안의 밤’인가 하는 것들이 더러 열릴 적 일이다.
어쩌다가 어린애까지 불려나가 노래하게 되었다.
“아빠 따라 천리 길 머나먼 길을 봇짐 지고 타박타박 피난 온 소년...
머지않아 이 땅에 평화가 온다 씩씩하게 싸워라 피난 온 소년.”
응? “재청이요~”까지 터지네.
준비한 곡이 따로 없고 아는 노래라고는 찬송가밖에 없어서...
“흠이 많고 약한 죄인도 용납하여 주시고” 대목에 이르러
앞줄에 앉았던 아저씨가 우는 거라, 두 줄기로 흐르더니 어깨까지 들먹이며.
그땐 몰랐거든, 흠이 없었거든.
세월 탓만도 아니고
허벌나게 터져서 뿐만 아니고
엿 바꿔먹듯 버린 게 많은 터에
이제 와서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할 수도 없어
“흠이 많고 약한 죄인도 용납하여 주시고”에서 한숨 쉬며 잠깐 머물게 되더라고
{그래서 박자를 놓치게 되더라고.}
약관(弱冠)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랬던 윤동주는
뭘 좀 알았을까?
목련 꽃잎을 보다가
“한때는 고왔을”이 아니고
“Yes, my darling, you will be always young and fair to me.”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