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준비하다가
1
버릴 것 고르자면 버릴 게 없으니까
가져갈 것 챙기자고 하면 짐이 좀 줄어들는지?
사는 동안에는 지녀야 하는 것처럼
소용없는 것들 다시 쓸어 모은다.
언저리가 삭아 떨어지는 양면괘지와
일부러 커피를 엎질러 세월의 착색을 연출한 다른 묶음까지.
많은 원망 숭숭 썰어 넣고 살짝 증오 조금만 쳤는데
그래도 너무 독한가?
더 많은 그리움 쏟아 붓고 한소끔 끓여냈는데
간간하지도 않고 슴슴하지도 않다.
얼려두었던 보약 버릴 수 없어 데워
마셔 없애자!
2
허리 아를 때쯤 되어 일어서면 조팝나무가 보인다.
웬 튀밥?
쓸고 보니 살비듬과 발꿈치 각질 떨어져나간 게 한줌이다.
봄날 꽃 천지에 벙글거리는 사람들 다 착해졌다고 그러기에
듣고 가만히 있었다.
꽃이 지면?
동백, 감꽃, 오동꽃은 귀 밝은 사람은 들을 것이고
목련 부서지고 작약 무너지는 건 워낙 야단스러우니까...
복사꽃잎 한쪽 떨어져나가는 소리도 내겐 천둥이더라.
얼른 비설거지 하라고 비꽃으로 경고하는 소리 있지?
그러니 자꾸 깨게 되더라고.
거기 아직 사는지
가면 반겨줄지
노랑리본 나부낄지?
3
“묻고 묻고 하늘 보는 피난 온 소년”이라고 그랬는데
요즘에야 검색 엔진 있으니까 사람 붙잡고 물을 이유가 없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를 풀이하라고 그랬더니
“백번 물어보는 놈은 한 마리 개만도 못하다”라고 그러더라는.
녀석은 아는 사자성어를 열 개 쓰라고 했더니
울긋불긋, 파릇파릇, 아롱다롱, 한들한들, 낭창낭창, 하늘하늘, 싱숭생숭... 까지
거침없이 써내려가더니 다 시시해졌는지 일아 보기 힘든 그림으로 삐뚤빼뚤이라고 적었다.
봄이니까...
한 개 보태줬다. 냉먹속차.
나도 견디기 어려워져 비몽사몽으로 채웠다.
물을 게 하나 남았어.
그냥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