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갔었네
{속초 사랑? 씩이야.
일 있어 몇 번 다녀온 것뿐이야.
고우니까 “아이 어쩌면...” 하는 거지 마음 빼앗길 정도는 아니네.
그래도 밤마다 두 번 들리는 걸음, 그런 것 알아?
잠들었으려니 싶은 때 가서 머리맡에 쪽지 남겨놓고는
돌아서면서부터 후회가 되었지만
내 집에 다다라서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다시 가서
열렬한 사연이 부끄러워 시든 꽃 치우듯 챙겨오는...
그렇게 두 번 왕복하면 밤이 가버리더라고.}
산에 피는 것들은 작고 빛깔이 덜 진하고 화려하지 않지.
강제 진화로 특화(特化)하기 전, 그러니까 좋은 것만 뽑아 조작하기 전이라 수수하지.
향기만은 뜰에 갇힌 것들이 따라갈 수 없지.
산목련은 말이지... 우와~ 육이오 때 전사자들의 시신 썩는 냄새를 감춰줬다고 그러더라.
그 산목련, 그리고 산벚꽃... 꼭 산에 피어서 그렇게 부르기보다는 과(科)가 다른 것이거든.
따지자면 그렇다는 거지 다름을 강조해야 할 이유는 없어.
다들 조금씩 다르고 그렇게 다른 줄 알지만
그래서 저 같은 사람 하나도 없는 게 제 자존심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그렇구나 너는 그렇게 생겼구나”라고 말할 필요는 없거든.
그렇다는 거지 말할 것도 아니지만, 산철쭉은... 독하지 않더라.
서울에선 자취를 감춘 것들
북진하는 군대에 밀려 창황히 패주한 것들이
동부전선으로 이동하여 숨고르기 중이다.
이사 트럭 보내고 짐 풀기 전에 나왔다.
서울 빠져나오기 힘들어 인제쯤 오니까 어두워졌다.
망월인가? 하루 남았고 다 차지 않아 더 좋은 밤이다.
우리는 소도구를 지니고 다니지 않으니까
어둠에서 어렴풋이 드러내는 것을 담자면 손 떨림 멈춤과 숨 쉬기 거부하기 말고는 도리 없지만
진부령 넘다가 달 따고 싶었다.
화진포 지나 내려오다가 아둘람에 들린 후
골라잡아준 바다 쪽 전망 좋은 방에서 밤새도록 가슴 치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 가슴에 내 목을 묻을 때? 응~ 왜?
첫 동트는 햇살에 두 팔을 벌리듯
그 맑고 밝은 믿음에 기대어 나는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의 강기슭을 내려가네
닻을 내리는 편안함으로 당신 목이 내 목에 감기고
내 목이 당신 목에 감길 때
아아 날개 흰 새 떼들 날아올라
천국의 사과꽃밭과 수선화꽃밭에서
사랑의 명주실을 나르는 모습 황홀하네
-고정희, ‘당신 가슴에 내 목을 묻을 때’ (부분)-
동트니 좋은 걸.
한숨 못 잤는데도 괜찮다.
바다니까
바다 소리 낸다.
하늘이라
하늘빛 띄었다.
제 격이 상격이거든.
그렇게 하늘 보고 바다 듣고 산 맡고
{어린 자작나무 여린 잎에서 처녀 살 냄새 난다.}
나는 내게로 돌아간다.
많이 늦었지만
일부러 늦추었어도 아직 막히겠지만...
이삿짐 풀지 않은 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