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와 코딱지꽃
오봉 마을, 송지호 곁에 있고 한옥 보존 마을-제대로 남은 게 별로 없지만...-로 지정되고
남하 루트인데도 한국전쟁 중에 피해가 전혀 없었다는 승지(勝地)이나
농촌이 다 그렇지 뭐, 땅값 오르고 보상금 챙긴 사람들 떠나고 남은 이들은 노인들뿐이다.
봄이 오고 꽃피니 그래도 좋다.
언제 복음이 들어갔기에 백 년이 지난 교회가 있다.
전형적인 농촌교회는 아니고 의식화된 교사들이 교인 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 제대에 오르지도 않은 민들레가 놓여있다.
잡초라고 따돌리고 지독한 생명력만큼 혐오감도 조장시키는 민들레
그 샛노란 웃음으로 그나마 봐줄 만한 것
발치에 그렇게 쪼그리고 있으면 누가 알아보겠냐?
떡값이냐/ 뇌물이냐는 논쟁도 있더라마는
서울 대교회들은 제단 장식 꽃값인지 뭔지로 얼마나 처들일까?
장식품이라면 할 말 없지만... 제물은 차라리 초라해야 될 것 같아.
있는 것 재고 싶은 제주(祭主)의 제물은 받지 않으실 거야.
아 그 소몰이 노인의 헌화가 말일세,
제가 예뻐 찬미만 받았기로서니 굳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곳에 핀 꽃을 바라는 수로부인에게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했던 마음으로...
아니다, 꼴은 비천하지만 그래도 저를 원하신다면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로 드러누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그러는 마음.
택함 받은 민들레 한 줌 저렇게 제단에 놓이게 된 이유리라.
부자의 문간 옆에 누운 거지 나사로처럼 꼴사납다고
일부러 눈 돌린다면 뵈지도 않을 곳에서 죄 많은 여인은 바들바들 떨며 있다가
용기를 내어 그분께로 가서
발에 입 맞추고 눈물과 향유를 부어드리고 머리털로 닦아드렸다.
그렇게 그 분의 발에 닿고자 민들레는 작은 키를 그나마 낮추며 엎드렸다.
볼거리를 찾는 이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겠지만
위에 계신 분이야 눈여겨보시지 않겠는가.
그냥 내려다보시기만 하는 게 아니라 눈높이 사귐을 위하여 내려오시리라.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건져내시어 귀족들과 함께 앉도록” 하시자면
높은 자리에 계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추시고 허리를 굽혀 손을 뻗치셔야 할 것이다.
일어나지 못하는 자를 안으시려고 진토와 재무더기 안으로 들어오시기도 할 것이다.
{시편 113: 5-8}
당신이 입맞춰주심을 감당할 수 없고
저는 그냥 당신의 발을...
이 세상 낮고 서늘한 곳으로
내려서고 싶다
누군가 내 발등을 씻어주고
발끝에 입맞춤을 하는 순간, 눈썹이 떨듯
내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산벚꽃 진 자리에 노랑매미꽃이 피고
어디선가 골짜기 찬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길이 끝나는 어디메쯤 홀연히
날개를 접고 싶었던 좀청실잠자리
물소리 따라 날아가고 있다
가던 길 되돌아보면 아름다워 눈물나는
애기똥풀 코딱지꽃 얼레지 밑씻개풀
키가 낮아 이 세상에 상처 한 잎
내밀지 못한 애잔한 들꽃들의 시린 발등을
나 언제 씻어준 적이 있었던가
마른 꽃잎 적시고 가는 물소리
눈을 뜨면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들의 삶 마냥
낮은 데로 흘러가는 살여울 물가에 남아
오래 오래 발목을 적시고 싶다.
-나종영, ‘세족(洗足)’-
남자들 페인트칠하는 동안 여자들은 나가 산나물을 뜯어왔다.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네”라고 했던가
한 상 오른 반찬이라는 게 명이나물, 개두릅, 머위, 참나물, 취나물, 돌나물, 돌미나리
더러는 생것 쌈으로 들고 더러는 데쳐 소금이나 간장 정도 쳐서 든다.
{고추장과 된장의 진한 맛이 나물의 향조차 지워버리지 말자는 얘기.}
특별히 놓인 모듬 접시에 들어간 나물 종류를 읊자면...
나비나물 + 취나물 + 잔대 + 삽주 + 꿀꽃 + 다래순 + 마타리 + 부지깽이나물 + 가시오가피.
아, 손님 맞는다고 꽃병이 놓였다.
높은 병이라야 10cm도 되지 않는 앉은뱅이들이다.
뭐가 꽂혔는가 하면 제비꽃 + 졸방제비꽃, 석류화(조팝, 흰싸리), 꽃마리, 개갓꽃, 코딱지꽃.
다들 꽃이라고...
뭐, 코딱지꽃이라고?
그게 이름이... {광대나물이라는 다른 이름이 있기는 하다. 영어로는 보통 henbit라 하고.}
그거 아주 지겨운 잡초이거든.
나는 텍사스에서 잔디 가꾸고 문전옥답에 푸성귀 심어놓고는 민들레와 그 녀석을 천적으로 알고 싸웠거든.
빈 땅만 있으면 솟고 끊긴 뿌리 조금만 남아도 다시 돋아나고, 저런 악질들...
손에 흙 묻히지 않은지 두어 해 됐다.
너희들 너무 반갑다. 이제 손 내밀어도 되겠다.
보잘 것 없는 것들도 접사로 박으면 절세미인처럼 보이더라.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거시적, 미시적 관점이니 할 게 아니고
예뻐서 끌린 게 아니고 끌렸기에 고운 님 된 것이라면 설명이 될지?
“왜 날 사랑하나?” 하는 이들에게 대답이 될지?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 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김명수, ‘우리나라 꽃들엔’ (부분)-
난 뭐 서러울 것도 없다.
꽃 지는 저녁에 슬프지도 않네?
들의 백합화를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나...
아궁 속에 던질 풀도 고이 입히시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