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江花月夜(춘강화월야)
춘강화월야
직원 수련회가 퇴수(退修, retreat)의 개념으로는 처음이었다고 생색낼 만큼
‘빈둥빈둥’의 일정으로 경주에서 있었다.
코오롱호텔을 나와 불국사 담을 끼고 한 바퀴 돌았다.
문득 할 일이 생각났다는 듯이, 늦었지만 약속 지키겠다는 듯이
툭 물방울 하나 발등 위로 떨어지자 응 웬일? 하며 하늘 쳐다봤다.
유성우(流星雨) 쏟아질 철은 아니지만 한 줄기 긋고 사라진다.
청명한 밤인 걸.
‘春江花月夜(춘강화월야)’ 몇 구절이 떠오른다.
張若虛(장약허)가 지은 것이 알려졌지만
같은 제목으로 王錫(왕석)이 지은 시도 그에 못지않다.
{빼곡 들어찬 한자 베껴놓고 돌아보면 모를 자 또 튀어나오거늘...
몇 줄만 빼놓지 뭐, 피차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江流宛轉繞芳甸 月照花林皆似霰
강물은 굽이굽이 꽃 핀 들녘 휘감아 흐르고
꽃 숲에 달빛 쏟아지니 싸락눈 내린 듯하다
시 안에 그림 있고 그림 안에 시 있다는데
진경산수(眞景山水)라도 그렇지 사진(寫眞) 같을 이유는 없으니까
모든 그림은 말하자면 사의화(寫意畵)가 아닐까 싶다.
달은 그냥 달이 아니고 ‘당신’일 것이다, ‘그대’라는 존재감일 것이다.
달빛은 그리움일 것이다.
玉戶簾中卷不去 搗衣砧上拂還來
주렴 말아 올려도 달은 떠나지 않고 {오히려 쏟아져 들어오던 걸}
다듬잇돌 두드리나 되돌아오네. {소리 내어 쫓는다고 가버리면 그리움이 아니게?}
此時相望不相聞 願逐月華流照君
있는 자리에서 달이나 바라보는 거지 소식 나누지도 못하니!
존재감은 존재가 아니거든...
달더러 내 님 비추라 한들, 따라가 그리움 쏟아 붓는다 해도
몸으로 더불어 있음 같기야 할까.
{우상숭배도 그래서 생기는 것이리라, 보이지 않는 신을 경배하다가 힘들어지니까.}
왕석도 날리는 눈이 숲을 채운 듯 하다고 그랬다. 그래... (晧月飛空雪滿林)
바람 아직 차고 얇은 옷 입고 나왔지만(東風送冷春衫薄)
꽃과 달 애련한 모습 돌아보지 않을 수 없어(花月堪憐難擲恪)...
{이러고저러고...}
동틀 때면 헤어져 달빛 밟으며 돌아가지만(侵曉分途踏月歸)
간밤 봄 강의 일 꿈이라면 밤마다 꾸려네(連宵應作春江夢).
진하지 않아 좋은, 분홍 연두색 자락
밤새 소복이 내린 달빛 어디로 갔는가
둘이 자던 안채 지붕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는다.
꽃 떨어진 자리는 ground zero?
버찌들은 어디 숨었다가 한꺼번에 나타나는가?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지금이 더 좋다.
연두색 단풍 새 잎 물결 이부자리 삼자면
덮기에 좋은가 깔개로 할까?
분홍이라고 다 같은 분홍이 아니어서
벚꽃, 살구꽃, 복사꽃이 요란했지만
아직 물리지 않았는지
모과 꽃, flowering dogwood가 새롭다.
Flowering dogwood? 그게... 말채나무, 산딸나무, 층층나무라고 부르기가 그렇거든...
봄 보냈다고 하고서
서운했지만 이제 맘 잡았다고 하고서
연분홍과 연두, 그 촌스런 조합의 한복 입고
봄처녀 제 오시네...
내 참, 염치없이 다시 설렌단 말이지.
다 이슬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