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가 기운 떨어져 땅심 돋우려고
객토
토지가 기운을 쓰지 못하니 새 흙을 가져다 부어야겠어요.
물줄기도 바뀌고 강산이 많이 훼손되었어요.
새 힘을 받아야 회복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이제 누우셔야 되겠습니다.
농부들은
땅심이 약하면 새 흙을 넣는다
산에 들에 자란 풀도
거름으로 넣고
한번도 곡식을 가꾼 적 없는
붉은 새 흙 퍼다가
흙갈이를 한다
-김명수, ‘객토’ (부분)-
사랑
그분은 그러시던데...
내야
예쁜 죄 하나 못 지었구나
저승과 이승, 몇 겁 훗세상까지
못다 갚을 죄업(罪業)을
꼭 둘이서 나눌
사람 하나
작정도 했건마는
빗물에 손 씻는다
죄 하나라도 운명 없이는
이루지 못함을
-김남조, ‘비’ (부분)-
이분은 또 그러셨어요.
육십 고개 넘었는데
보이지 않는 곳
바라보며
사랑노래 부르는 친구
가을의 잔영 드리우며
물결치는 눈동자
친구여
이 세상 온갖 사랑 중에
남녀의 사랑이란 한 부분
그는 놀라 나를 보네
부용꽃 떨어지는 시간만큼
침묵이 흐른 뒤
그건 그래,
낮은 목소리
삼키는 한숨 소리
-박경리, ‘사랑’-
“그건 그래” 그랬지만...
꽃잎 하나 더 떨어지고 나서
“그렇지만...”쯤 보태지 않았을까?
기댈 건 아니지만
매달릴 건 아니지만
그러면 또 어떻겠냐고...
‘한 호흡’ 지나면 새로 시작하는 셈인데
{개기겠다는 게 아니고... 저도 갑자는 넘겼기에 조심스레 입을 떼지만...}
“움돋고 꽃피는 봄이 왔어요” 그러면 안 되는가?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 ...)
예순 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 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문태준, ‘한 호흡’-
아름다운 가을 길었네
춘하추동이 사등분된 건 아니어서
여름에서 겨울로 돌입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가을이 거의 없는 데도 있는데
그만하면 아름다운 가을 길었네.
곱게 물들고 한참 붙어있었네.
Lark Ascen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