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물은...
숲에서 솟아 숲으로 흐르며 숲을 적시고
숲을 떠나도 숲으로 돌아온다.
물과 숲이 만나면
“이것은 그것 아니다, 여기는 거기가 아니다” 그러지 않는다.
물이야 다 물이지 숲은 그렇게 숲이고.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건
산은 산이라 물이 아니고 물은 물이라 산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고
산은 산으로 있고 흘러갔어도 물은 물로 남았다는 얘기.
솔바람 사라진 데에 활엽수 들어서고
쉬리 놀던 물이 삼급수 되었어도
자연은 저절로, 스스로, 그대로, 그렇게 되어질 대로 되는 힘이다.
{Natura naturata는 natura naturans이기도 하니까...
실은 그렇게 구분할 것도 아니다.
제가 저를 만들고 저를 되돌리고 치유한다니까.}
숲이 되고픈 나무?
나무 하나 커졌다고 숲이 되는 건 아니니까 퍼트려야 할 것이다.
단성생식으로 될 일은 아니고
저 아닌 것들과 더러는 맺어지고 더러는 나누면서
혹은 견디고 혹은 즐기며 더불어 살다보면
남이라고 남으로 남지 않고
제가 자라 저같이 된, 제 자식들 같고 제가 그 지체 같이 된
숲이 들어섰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에
너는 나에게로 와서 꺾었다.
이름은 사람들이 붙이는 것
무슨 나물이니 무슨 꽃이니 불러줬다고
관상용, 식용, 약용... 해가면서 뽑든지 패든지 꺾을 것이니
{용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바라볼 수만 있어? 그렇다면 별 문제지만...}
이름 없으면 어때?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멸종 위협을 의미한다.
{‘동강할미’니 그런 이름 필요 없다니까.}
저만치 홀로 피었다가 지든지
몰려 저들끼리 오순도순 살든지
제발 내버려두었으면.
누가 군락지를 찾던데?
눈물의 땅이라고 그러지만
자규만 우는 게 아니고
다들 슬퍼한다고.
아픔 없는 데가 어디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