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봄

 

 

1

 

어 이 사람 말하는 것 보게?

 

    야 이년아, 그런다고

    소식 한 장 없냐

 

       (황지우, ‘들녘에서’)

 

정호승도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그러더라.

 

하긴 그저 소식 한번 넣는 게 무한감격으로 다가오기도 하거든.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그야 편지만은 못 하지, 고운 종이에 공들여 쓴 글씨 바라보던 감동 같지는 않지만

‘별로’였던 이메일로라도, 그 뭐냐 문자메시지인가라도 가끔 안부 넣어주게.

마음은 우체부 기다리던 시절과 변함이 없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

 

‘꽃소식’은 보고픈 마음 에둘러대는 거지

어딘가 같이 가고 싶다는 얘기 꺼내기 뻔뻔해서 딴청 떠는 거지

꽃이야 누굴 기다려주고 그러지 않을 게고

{흠, 그야 둘이 만나면 꼭 꽃 보러 갈 건 아니니까}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가 뻔할 뻔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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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주 나서지 못하니까

어렵사리 떠나게 되면 본전 빼고 싶거든.

뭘 알아야 즐기지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능력이 있어야 말이지.

해서 없는 집에서 모처럼 나들이 다녀오고는 부부사이만 나빠지더라고.

 

그저 하룻밤 나가 잔 셈이지만

만 사천 냥짜리 소 한 마리-모든 부위를 조금씩 다 준다고 해서-도 먹어치우고

{까짓 광우병... 십오 년 후에나...}

올갱이 해장국, 곤드레 비빔밥... 이름난 건 다 건드려보고

어디를 다녔냐 하면...

그게~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막상 목적한 데는 이르지 못했네.

“이거 해병대 훈련도 아니고 당뇨 환자를 그렇게 끌고 다녀도 돼?

우정이란 눈높이에서 배려하는 거야... (투덜투덜, 씨부렁, 구시렁, 지청구)”

동행이 그러고 보니 목표물 500m 전방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어라연 가본 사람은 아는데...

초입에 깔딱고개로 기죽여놓고 가도 가도 자갈길

무슨 지형지물도 없고 얼마나 남았는지 여기가 어딘지 제 길에 들어서기나 한 건지...

일몰 전에 돌아올 수 없다고 우기는 바람에 뒤돌아섰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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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뭐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반환점에 이르러 확인표를 받는 것도 아니고

오는 길 좋았으면 됐고

가는 길 같이 갈 사람과 편안한 게 좋고.

 

진탕 고생만 했다고 치고

다음엔 잘할 것 같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 그건 홧김에 내뱉은 말

해서, “다시는...”이라는 결심은 흐지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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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동 꽃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는 나른한 봄날 오후

어찌어찌 잠들었다가

석양이 기운을 잃어 달궜던 자갈의 따끈함을 지켜주지 못하니

이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하기에 깬 게 아니고 깨고 나서 “일어날 때가 됐으니까” 그런다.}

립 반 윙클이라 치고...

 

그새... 작약 어디 갔는가?

해체가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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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봄이라고

봄나들이 나갈 시간 벌어둔 게 있다고

같이 가도 좋겠다고

장마와 하안거까지는 한참 남았다고

 

{내가 꺼낼 말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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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에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

   별들이 뜬 별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도종환 시, 아깝지만... 곡은 지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