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내리는 비
옥탑방이라고 부를 것 있나 Penthouse라고 하자.
달포 살다보니까 이만해도 어딘데... 꽤 괜찮다는 생각도 들지만
비 오는 소리는 아휴~ 장난이 아니네.
시내버스에서 전화하는 이들 악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고국 탈출을 고려하는 이에게
그것은 가히 성(聲)고문 수준이다.
그래도 시원은하더라.
울고 싶은 사람 따귀 부쳐주듯 오,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사월 소나기들은 오월에 꽃들을 데려온다(April showers bring May flower).
뭔지도 모르고 “사월은...” 그러던데...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길러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각성시킨다.
-T. S. Eliot, ‘황무지’ 모두(冒頭)-
알뿌리에서 꽃대가 돋고 마른 가지에 다닥다닥 꽃등이 달리자면
먼저 흠뻑 젖어야 되거든.
그러자면 비 좀 세게 뿌려야 되거든.
자 그렇게 꽃 피웠으니
갠 날이 많아야 한참 볼 수 있겠다.
나빠, 오월에 오는 비?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꽃을 재촉하여 지게 해서 야속하다고?
모내기철인데 무논이 말라서야 되겠니.
이 비 그치면? 더욱 푸르리라.
꼿디고 새닙 나니 녹음이 깔렷난대
-‘사미인곡’ 하사(夏詞)에서-
비야 뭐 언제라도 내릴 수 있는 거니까
땅이 메마르고 구름이 무거워지면 쏟아야 하니까
오월에 내린다고 어쩔 게 아니다.
오면 오는 거지.
그래도 종일 내리니 그러네?
다리미질도 하고 책도 들고 그러는데
낮은 길고 비는 그치지 않는다.
청색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그렇다.
치사해... 그러면서 놓칠까봐 마음 졸이고
울고 나서는 울린 사람에게 사과하고
가해자에게 매달리는... 에고 그게 뭔지?
{난 지나갔는데...
나 때문에? 그건 어쩔 수 없네.}
잠행과 은신을 익혔으니 녹음과 빗소리를 엄호 삼아
조심조심 살금살금 숨죽이고 소리 내지 않고 아주 느리게 접근해서
규방 침투하기가 무에 그리 어렵겠냐만
마음을 훔치지 못할 바에야 그게 다 무슨 소용?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고정희, ‘하늘에 쓰네’에서-
오가고 만나고 그러지 않으면 또 어떠냐고
귀차니즘이 고질이라 시름시름하면서
무슨, 산뜻한 빌빌거림이라?
아름다운 오월인데
그렇게 하루 또 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