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장미
Prelude: 그랬어요
만나자고 한 책방에 갔더니 친구는 책 세 권을 내놓고 하나 고르라고 했다.
{자다가 일어나 봉창 뜯는 소리나 하는 것 같은 스베덴보리가 현대물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뭐 그런 얘기도 있다. ‘시인을 위한 물리학’, 권하는 건 아님...}
저녁으로 수제비를 들었다.
“밥 먹었으니 커피나 한 잔”의 틀을 깨고 우리는 그냥 걸었다.
화동 학교 시절에 송충이 잡으러 가던 삼청공원에 들어오니
응, 웬 냄새? 아카시아지 뭐.
떨어져 매미 허물 같은 것들이 쌓인 데에서도 아직 좋은 냄새가 난다.
비 피하도록 지어놓은 곳에 ‘ㄷ’자 형으로 벤치 세 개가 있어 셋이 하나씩 차지하고 누웠다.
더러 여성 혼자 다니는 산보객들이 지나갔으나
어둠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눈에 띄지 않는지 두려움 없이 지나친다.
달 없을 밤은 아닌데 캄캄하다. 별도 없다.
좋다면 좋을 밤이었다.
{언제 이런 시간 또 가져보겠는가?}
Interlude: Whatever is is good.
알면 어때
모르면 어때
그러면 어때
아님 어때
아무렴 어때
-다 좋다니까-
흔히들 하는 얘기지만...
O rose, thou art sick!
The invisible worm,
That flies in the night,
In the howling storm,
Has found out thy bed
Of crimson joy,
And his dark secret love
Does thy life destroy.
-William Blake, ‘The Sick Rose-’
허
그래
그러네
그렇지 뭐
그렇지 않든
다 그렇다니까
돌아볼 것도 없네
앞으로도 그리 될까
그렇다 그러면 그렇지
그런 줄 알고도 해보는 말
-One to Ten-
아주 하얗지만은 않고
홍조를 띠기도 했던데
그렇게 가까이 지내면서
자주 비비면서
더러 섞으면서
물들지 않을 수가 있냐고?
국과수 저리 가
검시의라도 그렇지
살아있는 것에는 손대지마라.
-내버려둬요-
3 Postlude: 가시까지 먹기
사랑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고통이라면, 그 고통은 세상의 어떤 다른 쾌락보다 더 달콤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남자 하나 사랑한 게 죈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남편과 자식 때문에 견디어야 했던가?
{공평하게 다른 쪽도 짚어야 할까?}
남편은 멋모르고 시작한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많이 견디어야 했을까?
‘통쾌하다’는 말을 쓰지요?
‘Extremely delightful 아주 유쾌하다. 너무 기뻐서 시원스럽다’는 뜻인데, 그게 합성어입니다.
통(痛)은 아픔이고 쾌(快)는 즐거움인데, 아픔이 끼어든 즐거움이 큰 기쁨이라니까요.
사랑의 아픔은 사랑의 기쁨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요.
사나이가 그까짓 것 사랑 때문에 울기는 왜 울어? 그건 잘못된 말.
사랑은 울음이 있어 사랑입니다.
그 울음이 울림 되니까 사랑은 감동이고, 사랑은 사랑할만한 좋은 것입니다.
사랑의 울음은 사랑의 기쁨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네요. 견딤이란 꽤 괜찮은 거네요.
‘자비’라는 말을 쓰지요? “자비하신 하나님!” 그러지요?
‘사랑하고 불쌍히 여김’이란 뜻이지요. 자(慈)는 사랑이란 말이고, 비(悲)는 슬픔이란 말입니다.
사랑에 슬픔이 따르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사랑과 슬픔은 나란히 가는 것이라고.
성현의 사랑은 보통 사람들의 사랑보다는 엄청 커서 대자대비라고 그러는데
큰 사랑은 큰 슬픔입니다.
“사랑이 이렇게 슬픈 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그러지 마세요. 촌스럽긴.
“사랑이 참 괴로운 거네요?” 몰랐어? 관둘래? 안 할래?
사랑의 기쁨이 사랑의 슬픔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고 기쁨은 슬픔 있어 더욱 기쁨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괴로운 것, 괴로운 만큼 사랑인 것을.
Love suffers, yet it never fails.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그랬지요?
자식 사랑하고서 본전 찾는 부모 봤어요? 그래도 사랑하는 거지요?
애인이 배반했다는 말을 하는데, 사랑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저를 배반한 거지, 누가 누구를 배반하나요?
그냥 사랑하는 거지. 일방적이니까 불완전한 형태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되받지 못할 때에조차 그 완전성을 손상한 적이 없습니다.}
에이, 무슨 말이 이리 많은지?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 모자라는 것이 많지만 그 중에 가장 모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세상 모두 사랑 없어 [죽어감]을 아느뇨?... 기갈 중에 있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네...
사랑 없는 까닭에 저들 실망하도다.”
사랑 없는 만큼 ‘사랑’이라는 말은 많이 나도네요.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는 것 아니고
수박에 대해서 들은 게 많다고 수박을 아는 것도 아니고, 이제 그만 말하렵니다.
그럼 뭘 할까? 수박을 먹어보는 것입니다. 좋으면 자꾸 먹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