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안 오고

 

왜 그러지, 생체 리듬이 바닥 친 날인가 몸이 영 무겁고 시르죽네.

좀 후덥지근하지만 아직 덥다 할 수야 없지.

‘束帶發狂欲大叫(속대발광욕대규)’라는 말은 가지 않는 더위를 견디다 못해 말복쯤에 뱉는 것이고

혼자 사는 방에서 챙겨 입지도 않으면서 문자 쓰겠다고 읊을 건 아니거든.

 

하늘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저러다 내려앉겠네.

손가락 꼿꼿이 세워 찌를까?

조금 쏟아내는 편이...

억만 줄기 내린다 해도 다 내게 퍼부을 건 아니지만

올 때 몰아서 오는 게 좋을 리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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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미얀마... 그런 일 여기서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우리는 우산 가지고 나가지 않았는데 비 내린다고 기상청을 욕하고

이렇게 더운 날 냉방장치를 가동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차라리 그냥 터지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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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들 일도 없고 한데

따끔하니 아픔 한 가닥이 스쳐가기도 하고 가슴이 묵직하네?

내부순환도로가 막히는 게 그거 무슨 심장병 증세는 아닌지...

 

희망, 그거 치사한 거야.

뻔히 아닌데... 소망사항이 사실은 아닌데

그 거짓말은 미덕으로 친단 말이지?

하긴 빵으로만 사는 건 아니니까

희망도 먹어야 하겠네.

장미를 먹는 건 아니지만

사랑은 먹어야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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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꿈꾸잖아?

그러니 잠들어야겠네?

 

재깍재깍 소리 거슬려 벽시계도 떼어냈는데

양을 세는 것으로는 약발이 안 먹힌다.

한 마리 잃은 양 찾는 시늉으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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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었는데, 나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가 잠 위에 색실로 땀을 뜨나 보다, 잠이 깨려면 아직 멀었는데, 누군가 커다란 밑그림 위에 바이올렛 꽃잎을 한 땀 한 땀 새기나 보다, 바늘이 꽂히는 곳마다 고여오는 보랏빛 핏내, 밤이었는데,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여자아이가 꽃을 수놓고 있나 보다, 너는 누구니 물어보기도 전에 꽃부리가 핏줄을 쪽쪽 빨아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보다, 나는 온몸이 따끔거려 그만 일어나고 싶은데, 여자아이가 내 젖꼭지에 꽃잎을 떨구고,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도 못했는데, 느닷없이 가슴팍이 좀 환해진 것도 같았는데, 너는 누구니 물어보기도 전에 가슴을 뚫고 나온 꽃대가 몸 여기저기 초록빛 도장을 콱콱 찍나 보다, 잠이 깨려면 아직 멀었는데, 누가 내 몸에서 씨앗을 받아내나 보다, 씨앗 떨어진 자리마다 스미는 초록 비린내, 나는 그만 꽃잎들을 털어내고 싶은데, 이마에 화인처럼 새겨진 꽃잎을 떨구고 싶은데, 밤이었는데, 나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는데

 

            -김경인, ‘한밤의 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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