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산수를 품고
나도 다녀왔네만
별난 백성이 원체 풍류를 즐기고 문화를 애호하기에 이렇다 할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거든.
줄 서는 것을 할 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다.
난 뭘 몰라, “좋다” 그러니까 좋은가보다 하는데
마르고 바랜 종이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고 그러대?
{그만큼 생동감이 있다는 얘기렷다.}
내 셔츠 밑으로도 실개천이 흐르던 걸.
장승업, ‘계산무진’
화제(畵題)
그림 이름이 예쁘더라고?
조석진은 ‘携琴歸墅’(휴금귀서)- 거문고 들고 별장으로 돌아가다-라 했고
안중식은 ‘山靜日長’이라 그랬지만...
화제가 멋있기로 치자면 중국인들을 따라가겠는가?
顧鶴慶(고학경)은 ‘眠琴綠陰 上有飛瀑’(면금녹음 상유비폭)이라 했다.
{짙은 숲에서 거문고는 쓸 일 없어 잠들고 (혹은, 거문고 베고 잠들고)
위로는 날리는 폭포 있으니...
司空圖의 ‘二十四詩品’ 중(典雅)에서 가져온 구절.}
樊浩霖(번호림)은 ‘雲如水流 遠度孤村’(운여수류 원도고촌)이라 했다.
{凉雲如水流 遠度孤村去 松花歷亂飛 鐘聲映高樹
서늘한 구름 물 흐르듯 멀리 외로운 마을 건너가네
송화 가루 어지러이 날리고 종소리는 키 큰 나무에 걸렸네}
묘향산 자락
袁瑛(원영)은 그 작은 부채에 그린 그림(‘山水’)에 제시(題詩)를 빼곡히 적어 넣었다.
胸藏丘壑 盛市不異山林 (흉장구학 성시불이산람)
興寄煙霞 閻浮有如蓬島 (흥기연하 염부유여봉도) (부분)
{가슴에 산수를 품고 있으면 도회라도 산림과 다를 바 없고
흥취를 안개와 노을에서 찾는다면 풍진 세상에도 봉래산 같음이 있네.
張潮의 ‘幽夢影’을 옮겨온 것.}
그렇구나! 나다니지 못하는 사람에겐 얼마나 큰 위로인가.
“난 아무래도 바다로 다시 나가야할까 봐.”라는 ‘Sea-Fever 있으면
그때부터 가슴에서 쏴아~ 소리 날 것이다.
이장손, ‘산수도’
최숙창, ‘산수도’
靑山如許好 澗水如好淸 (金時習)
아 저렇게 좋은 것을!
두문(杜門)
별난 사람에다가 운명이 그렇고 보니 그렇게 살았겠지만
산속에서야 문 닫아 걸 게 있나?
不出杜山門 (불출두산문) 문 닫고 나가지 않으니
前峯下鹿群 (전봉하록군) 앞산에서 사슴들이 내려온다.
床前鳴蟋蟀 (상전명실솔) 평상 앞에서 귀뚜라미 울고
庭畔有椿萱 (정반유춘훤) 뜨락에 참죽나무와 원추리가 있다.
猒客常稱疾 (염객상칭질) 손님 맞기 싫으니 늘 병을 핑계대고
勞煩欲默言 (노번욕묵언) 말하기도 번거로워 다물고 있고 싶다.
小窓誰是伴 (소창수시반) 작은 창가에 누가 있어 짝이 되려나
安息一爐熏 (안식일로훈) 향로에서 안식향만 피어오르네.
-金時習, ‘不出’-
{말하기 좀 그렇지만 돈이 없으면 다니기 어렵거든.
그래도 이르기를,
莫道生涯薄 (막도생애박) 박복한 생애라 말할 것 없네
苔錢散一庭 (태전산일정) 뜰에 흩어진 이끼 다 돈이 아닌가
쩝.}
Smoky Mt.
내려와서 버스 타려니 최순우 선생 옛집이 코앞이라서...
사랑 편액에는 ‘杜門卽是深山’ (두문즉시심산)이라 했다.
그런가? {주변 생각하면 그게 좀...}
넓지도 않은 마당에 신갈나무, 생강나무, 단풍나무, 모과나무
맞은켠에는 벚나무, 감나무, 산수유, 밤나무가 들어섰는데
그다지 복잡해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달항아리에 대잎 그림자가 비친다고 그러는데
마침 흐린 날이라서... {그렇게 씻지 않고서야... 엥이~}
아무튼...
혹 자폐증이 아닌가 자문한 적도 있다만...
문 닫아거는 게 어때서?
아 내 맘에 연하(煙霞)와 바람과 구름과 새소리 있네.
구름을 잡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구멍 뚫린 그물로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