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산소 다녀오는 길에
맑은 날은 밝아서 좋고 {그야 말할 것도 없지}
흐린 날은 그 왜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런 것 있지, 그래서 괜찮아.
날씨야 아무러면 어떻겠어.
적당한 눌림, 참을 만한 아픔, 어지럼 같은 것들엔 이골이 났고
관계없는 이들이 오늘 딴 곳에서 시시덕거린들 상관없는 일이지만...
응, 왜 그러지?
싸리비로 봉당 쓰는 소리랄까, 대숲 빠져나가는 바람소리랄까 그런 게 그치지 않는 거야.
번짐과 퍼짐이 흐름이 되어 밤까지 이어지는 날
갯메꽃, 해당화 핀 모래언덕에나 다녀올까 그러면서
소라껍질을 귀에 대고 주라기로 거슬러가기도 하고
성의 없는 답장조차 보내지 않을 사람에게 싱거운 안부나 띄울까 그러면서
안절부절, 우왕좌왕, 제 마음 달래지 못하다가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어머니 산소에 가본지 오래네”에 생각이 미친 거야.
옛적에 다리 위에 4'x3' 점포 얻어 편물가게 하시던 어머니 찾아갈 때처럼
“저 왔어요” 그랬다.
{형제들과 같이, 처자식 데리고 오지 못했지만...}
그때 “숙제 안 하고 왜 왔니?” 그러시듯 “차도 없으면서 어떻게 왔니?” 그러신다.
연장 챙겨왔으니 간만에-제대로 하기로는 처음일 거야- 말끔히 벌초했다.
{근처의 외조부, 외증조모 산소까지도... 하하 어머님께 칭찬 들었네.}
이끼 걷어내니 더러 잔디 새로 입혀야 할 데도 눈에 띄지만
두 달 지나면 아버님 곁으로 옮겨 가실 테니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고~” 하듯 봉분을 살살 두드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만 가보지?” 그러시는 소리 듣고 일어난다.
빈산에 뻐꾸기 울음 퍼진다.
사랑은 꼭 그만큼에서
그 빛깔만 같이
-장석남, ‘뻐꾸기 소리’ 중-
내려오다 보니 묘지 관리인 집에 오동나무 한 그루 서있고
화분에 심긴 섬초롱꽃이 더러 피어있다.
흠, 울릉도 가야 볼 것도 아니고 희귀종이랄 것도 없다.
족보 있는 꽃들이 조선 천지에 널리게 된 게 고마운 일인지.
또 빼앗기지 마라. 하늘말나리, 섬나리조차 히딩크 나라에 로열티 주고 들여와야 한다니...
어둔 길 나다니는 님 따라다니며 밝혀줄 수는 없지만
대문에서 한참 나와 꽃초롱 들고 기다리는 맘 알기나 할까?
오동꽃 보랏빛 떠는 하늘빛
오동꽃 보랏빛 조그만 초롱
멀리 있는 너를 두고 나 혼자서
5월 하루 더딘 날 나 혼자서.
-나태주, ‘오동꽃’-
보랏빛으로만 치자면 더 고운 것들 많거든.
모양으로 해도 더 잘빠진 것들 많거든.
오동꽃은 오동꽃이라서 “아아~” 하는 거라고.
오동꽃은 오동나무에 달리기에 대접받는 거라고.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앉는다던데?
{기억나, 예전에 ‘일석이조’라고 비웃던 인물?
저 못난 줄 아니까 뽑은 사람들 일하도록 내버려뒀지.
자수성가하여 최고위에 오른 사람들은 종교와는 상관없이 제 주먹과 제 머리만 믿더라고.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러더라고.
정직하지도 않지만, 그건 뭐 그렇다고 치고... 사람이 말을 들을 줄도 알아야지...}
그게 좀 흐느끼는 소리를 내거든.
베어 가야금을 만들기도 전에 말이지.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조지훈, ‘승무’ 중-
바람 소슬 잎들이 다 푸름을 잃어갈 때
‘아 가을인가’를 알리는 게 꼭 오동잎이어야 하는지...
옛 어른도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이라 하시지 않았던가
못가 봄풀들 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섬돌에 지는 오동잎 이미 가을임을 알리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발표한 글에서 그러셨다.
“잘 자라준 육남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나도 얼추 어머니 이 땅에 계셨던 날수만큼 살았는데...
이렇게 살아있다는 게
나름 사랑한 거지
{사랑하지 않고서야 살 수 없으니까}
그래도 더 아끼고 잘 위해줄 수 있었으리라는 후회가
일말(一抹)이 아니라 한 말가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