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날
밥맛이 살맛이라는데
다른 맛은 누리지 못하니 잘 모르겠으나 밥은 맛있다.
맨밥 그냥 퍼먹어도 술술 넘어간다.
잡어서더리탕을 시켰는데 두부조각만한 민어 살점이 더러 걸리기에
“이러다가 주인에게 쫓겨나겠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넉넉하게 드리라고 그런 걸요.” 그러며 살짝 웃는다.
“아, 점심 잘 먹었으니 저녁은 ‘라보때’라도 되겠다.”며 찬장 열어보니 마침 라면도 떨어졌네?
바닥에 깔린 낟알을 박박 긁어도 한 공기가 안 되기에 감자 한 개를 같이 밥솥에 넣었다.
오이소박이 꺼내면 준비 끝.
그런데... 이게 웬 일? 두 토막 남겨두었던 것에 백태 끼듯 곰팡이가 무성하다.
놔뒀다고 이자 붙는 것도 아니고 제 때 먹어치워야 되는 거구나. 아까버...
바퀴벌레는 상한 음식 먹고도 식중독 걸리지 않던데... 그래도 난 만물의 영장이니까...
별꼴이네, 코끝이 시큰해지다니.
이수동 그림
자정 무렵이면 거긴 아침이니까...
아내는 혼자 이삿짐 싸는 좌절을 코맹맹이 소리로 호소한다.
딸이 전화 바꾸고는 “Happy Father's Day!” 그러고 사라진다.
아버지날? 맞아, 미국에는 그런 게 있었지.
한국에는 무슨 ‘Day’가 많다. White Day, 자장면 데이, 빼빼로 데이...
옛적 같으면 한해 내내 아버지날이니 하루쯤 ‘어머니날’로 떼어두는 게 필요했다.
요즘 아버지는 ‘family joke’이다. 어디 갔다가 흘리고 와도 알아채지 못하는.
아버지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그런데 어이하여 이 땅에 아버지날이 없는가 말이다.
연착한 이메일에 아들도 ‘Happy Father's Day’해놓고 “I'm praying for you.” 그런다.
해피? 그저 너희들 잘 있으면 되지.
비 머금은 구름 출렁거리는 아침
여의도에서 갈아타는 버스가 반환점을 막 돌아가기에 빈자리가 많다.
종착역이 시발역이 되는 거야.
인생 이모작, 감자 거둔 땅 갈아엎고 김장거리 심으면 되겠네?
산행이란 올라감과 내려감을 포함하고
{최근에 불행히도 언짢은 사람이 언급했다만, 정상에서야 오래 머무는 게 아니지.}
내리막길은 쉬운 만큼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발소 집 효리가 국내 최고의 브랜드 가치로 수직상승하는데 걸린 시간의 열배를 살았는데...
그동안 뭘 하고 살았나 싶은 생각은 없다.
출세에 뜻이 없어 한눈 좀 팔았지만... 괜찮았거든.
그래도 한 삼십 년쯤 남았는데...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는 말씀이야 아무 때라도 적용되는 거니까.}
아이들에게 “Boys, be ambitious.”할 게 아니고 “I have a dream!”하며 주먹 불끈.
뭐 큰 게 하나 걸릴 거 같아서도 아니고
마른 날 골프장에서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것에 몰빵할 게 아니고
대박은 없었지만 속박이 갈피마다 버릴 게 없는
이 걸음 그대로 가면 안 되겠어?
물감 값도 안 나오는 작품이 훗날 매매가 될 수 없는 인류의 공동재산이 되었다고 해서
그게 그 그림이지 뭐가 바뀐 건 아니거든.
사겠다는 사람 없지만 그냥 두어보려고 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강산애)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 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 ...)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가야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보면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