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라는 게

 

 

“기도는 발괄이 아니다”라고 그랬다. 돌아다닌 소문?

“그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더러 발광하지 말라고 그러더래.”

그렇게 된 와전(訛傳)에 엄청 욕먹었네.

발괄은 제 편 들어달라고 부탁하거나 하소연하거나, 신령이나 부처에게 구원을 빎을 뜻한다.

한자로는? 白活이라고 쓰고 발괄이라고 읽어야 하니, 내 참...

{犬牛白活 有誰存察, 개나 소가 지껄인다고 누가 살피냐, 두서없이 지껄여봤자 라는 말도 있네?}

 

 

‘고구마’라고 그런 걸 ‘감자’라고 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나도 옆에서 들었는데 분명히 감자라고 그러던 걸”로 거드는 사람까지 있어요, 에고.

그런데 말을 잘못 듣는 게 아니고 고구마를 가리켜 감자라고 그러는 데가 있거든.

제주도 일부. {보다 정확히는 ‘감저’}

그러면 그 사람들이 감자는 뭐라고 그러는데? 지슬.

지방에 따라 고구매, 고고마, 고그마, 고그매로, 감재, 감저로 발음하는 데도 있고.

 

 

뉴욕 북쪽에 있는 공군기지에 한국계 부인들 몇이 살았는데 성경공부를 하겠다고 그래서

한 주 걸러 한 번씩 간 적이 있다.

성경공부는 뭘, 그렇게 모여 이바구 찧고 가끔 한국음식 때려먹는 재미였지.

날 두고 어찌 부를지 몰라서 선생님, 오빠, 아저씨, 등 별 호칭이 다 동원되었다.

“오빠 오빠”라고 꼭 반복해서 부르던 여자는 그때마다 내 팔을 잡아 흔들며 절 쳐다보기를 바랐고.

어느 날 작은 다툼이 이상하게 확전(擴戰)되었는데, 그게 좀...

부추를 가리켜 누가 ‘분추’라고 했다. {아마 춘천 여자였을 거라.}

그랬는데, “저런 촌년, ‘푸추’지 분추가 뭐냐?”로 쏴대는 소리가 터지는 것을 신호로 와글와글.

“‘정구지’를 두고 뭔 소리들이여?” {영양, 영덕 쪽에서는 ‘정고지’로 발음.}

“우리 동네에서는 ‘졸’이라고 그래.” {‘줄’이라고 그러는 데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세우리’, 전라도에서는 ‘솔’, 광양, 하동 등 영호남 경계에서는 ‘소풀’이라고도 한다.

날더러 어느 게 맞느냐는 거다. 대답에 따라 광팬과 한 품은 안티가 생길 터.

“에고, 표준어로는 ‘부추’지만, 알던 대로 불러도 안 잡아가요.

부부 사이 좋으면 집 허물고 부추 심는다는데, 많이들 드시고 오늘밤에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렇게 상황 종료, 촌년 소리 들은 부인조차 웃었다.

 

 

어렸을 적에, 그러니까 흠 ‘전교 어린이회장’이었던 날리던 시절 얘긴데...

다른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이 벌어졌다.

양쪽에서 스무 명씩 나와 작대기와 짱돌까지 사용하는 험악한 전쟁이다.

{‘융니오’ 후라 본 게 그렇고, 고아원 아이들도 많던 때라서...}

우리 편 무기는? ‘꽐래’였다.

빈 다슬기 껍질을 던지는데, 그게 무슨 위협이 되겠냐고?

먹물에 담갔다가 던지면? 맞으면 옷을 망치고, 그랬다가는 집에 가서 혼나거든.

그 꽐래 말이지, 경기도 어느 시골 개울에 가서 “와, 여기 꽐래 많다” 했더니

서울 애 아니꼽게 보던 촌 애들이 “와, 서울뜨기는 달팽이를 꽐래라고 그런대요.” 돌리더라고.

이것도 꼭 같은 걸 두고 부르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아주 여럿이다.

올갱이, 꼴팽이, 대사리, 고디, 사고디, 골부리, 꼴부리, 고동, 고둥, 소래고둥, 민물고둥, 골뱅이, 우렁이...

 

 

내친걸음이니 생선 이름도.

그게 그거 같지만 학명으로는 다른 것, 아니 같은 고기인데 동네마다 딴 이름으로 부르더라니까.

 

강릉에서 ‘삼숙이’라고 부르는, 못 생기고 어벙해 뵈지만 탕으로 해 먹으면 맛있는 생선이지.

얼굴은 아니올시다인데 속은 괜찮은 부두 사람들이 다 아는 어떤 여자의 이름이 그랬다니까, 좀...

전라도에서는 ‘삼식이’라고 남자 이름을 붙인 모양, 어 ‘三食이’라 그런가 괜히 켕긴다.

굳이 표준어라 할 것도 없지만, 어류도감에는 ‘삼세기’로 나와 있다.

그걸 꺽쟁이, 멍텅구리, 망챙이로 부르는 지방도 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과물전 망신은 모과가... 뭐 그런 말이 있기는 한데

쓰임새가 다른 거니까. 그리고, 외모로만 평가할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못 생긴 걸 두고 잘 빠졌다고 할 수는 없지.

동해안 어시장에서 못난이 삼형제로 꼽힐 만한 게 장치, 곰치, 도치이다.

도치는 뚝지, 심퉁이, 씬퉁이로도 불린다.

삼척에서 곰치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좀 위쪽에서는 물곰, 아래쪽에서는 미거지라 하고

충청도에서는 잠뱅이라 하고, 통영에서는 꼼치, 더러는 물메기(미기)라 부른다.

‘맛집 기행’ 같은 데에서 곰치국이 “아조 게미있는”-호남 방언- 듯 떠벌리지만

에이, 김치 쪼가리 몇 개에 곰치 껍질 조금, 멀건 국물이 머이 그리 좋다고?

 

생선 이름 하나 더. 여수 가서 서대회와 더불어 찾게 되는 금풍생, 혹은 금풍쉥이.

사전에는 ‘군평서니’로 올라와있는데, 그게 충무공에게  평선이라는 관기(官妓)가 구워 바친 고기라 그렇다나.

너무 맛있는 거여서 남편에게보다는 꼬불쳤다가 ‘그 이’에게 주는 거라 ‘샛서방고기’ {쩝!}

그밖에 쌕쌕이, 꾸돔, 꽃돔, 딱돔, 딱때기, 얼개빗등어리, 챈빗등이 등의 별명이 있다.

 

 

같은 것을 다른 말들로 부르기도 하고, 한 이름으로 다른 것들을 가리키기도 하니

말이라는 게 참 그렇다.

그야 나중에라도 “그런 거였어?” 하고 피식 웃으면 되지만

필살기(必殺技)로 급소 치듯 내지르는 말과 악의적인 왜곡(歪曲)은 일상생활에서

또 정치판의 ‘대변인’ 급 인물들의 논평에서 추방해야 할 것이다.

 

 

뭐 이런 걸 시간 써가며 주절거리는지 에고 참말로 시장스럽소.

설 연휴에 난 할 일도 없고 재미도 없지만

명절 준비, 차례, 가족과 손님 챙기기 등으로 바쁘고 고단한 시간 지나

컴퓨터 켜고 커피 잔 들고 한숨 돌리는 분 있으면 피식~ 그러고 쓱 지나가시라고.

 

 

 

저마다 딴 소리들이구나...  그래도 세상 잘 돌아가니까.

Sextet from Donizetti's opera "Lucia di Lammermoor"

Galli-Curci, Caruso, Minnie Egener, Giuseppe De Luca, Marcel Journet and Angelo Bada

Recorded: January 25,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