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밥

 

짐승은 사냥하거나 쫓기지 않는 때는 자면 된다.

사람은 할 일 없으면 생각하게 된다는데

아 주말에 잠만 쏟아진다.

 

자기만 하는데도 배는 고파지니

염치없는 일이다.

일하지 않았으니 먹지도 말라?

할 말이 아니지, 나야 말 들어도 싸지만

일감 없는 날품팔이들 어떡하라고?

 

뭘 먹을까?

엊저녁 퇴근길에 무짠지 조금, 고구마 세 개를 사들고 왔지.

아점으로 물 말아 꿀떡 으적으적, 석식은 군고구마 두 개가 사르르 녹는다.

 

{그 시절 어머니의 제안에 우리들 눈은 반짝반짝. “야키모 사다 먹을까?”

“아궁이 불에 구면 되는데 사다 먹긴?”

“얘는? 늦은 밤 떨며 기다리는 아저씨도 생각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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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맛있나’이다.

조식(粗食)이 성찬(盛饌)인 기쁨.

 

불도 지피지 말까 생각해봤는데

프로메테우스가 당한 형벌에 항의하는 뜻으로라도...

그리고 생식이니 하며 법석 떠는 이들 보니 웬 가루가 그리 비싼지.

{몇 해 전 어느 마을에 갔더니 손님 대접 한다고 솔잎을 한 소반 내오더라마는.}

 

‘소밥’이라 하니까 식우종(食牛種) 미친 소 만드는 우분(牛粉)을 말하는가 싶지만 그게 아니고

고기반찬이 없는 소반(素飯 혹은 素食)을 이르는 말일세.

 

“이밥에 고깃국 원 없이 먹고 죽었으면...”

그런 걸 마지막 말로 남겨 자식들 피멍들게 하던 시절도 있었지.

 

박범신도 그랬다. {‘제삿날’ 전문}

 

     울 엄니

    저승 가는 길에

    어여쁜 외아들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제사상에는 이것저것 풍수없이 놓지 말고

    기름 좌르르르

    투구 대가리로 푼 이밥에다가

    숟가락 꽂아도 자빠지지 않게

    고깃국 한 그릇만 아귀 맞춰 놔다오

 

    비는 내리고

    아내가 오늘 밤에도 국그릇 꾹꾹 눌러 쟁인다 맛도 없는 쇠고깃국

 

웬 쇠고기 타령이 이리 기냐?

 

{그야 뭐 ‘쇠고기’ 문제만은 아니겠지, 내 그거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푸욱 허리 꺾는 건 잘 하는데 그 진실성을 믿을 수 없어 약 오른다는 뜻?}

 

개다리소반-‘狗足盤’이라고 문자 쓸 일 없지?-에 열무김치 한 보시기 올리면 됐지

더 나올 게 없나 살강 뒤질 것도 아니고

불쑥 들어선 분 대접하기에는 정말 죄송한 소반(蔬飯)인데

감사한 후 눈이 열리니 성찬(聖餐)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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