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시대 2

 

500원짜리 백동전을 거슬러주지 않으며 옌뻰아줌마가 울상이다. “올랐어요.”

“아니 다 오르는데 어떻게 여기라고...” 하며 손 한번 잡아준다.

드링크 두 병 사서 다시 들어갔더니 주인아줌마는 일본 여자처럼 몇 번이나 절한다.

세상에 착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 대부분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지 않더라는 것

그런 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3,000원 하는 가정식 백반에 찌개 빼고도 반찬이 10가지

남김없이 비우면 하루 분 권장 염분섭취량은 이미 넘었으니까 저녁에는 맨밥 먹어도 된다.

제철 과일이라는데 살구 맛보지 못했기에 1,000원 내니까 세 개 준다.

다음 주에는 자두를 먹어봐야지.

 

 

8071002.JPG

 

 

사건은 쇠고기로 시작하였기에 얘긴데...

 

쇠고기라...

시장에서 순대, 곱창, 족발 같은 걸 더러 사먹기는 했지만

{내게도 아주 가끔은 소증(素症) 같은 게 엄습하더라고.}

1 g에 백 원 하는 쇠고기, 내 계산법으로 한 파운드에 45불인 보물, 꼭 그걸 먹어야 하는지

나는 지난 이년 동안 장보러 가서 쇠고기를 사본 적이 없다.

{두어 번 기웃거리고 한번은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북미에서 32년을 살면서 고기를 원 없이 먹어서 질렸다는 건 아니고

지금도 있으면 잘 먹을 거야.

 

 

8071001.jpg

 

 

그런데 고기 없이는 못 사나?

또 좋은 고기라야 먹을 수 있나?

 

수구레국이라는 게 있었지.

못 먹을 건 아니지만 버린 복어 내장 주워 먹고 일가족... 그러듯

독성화공약품을 사용한 가죽에서 긁어낸 부스러기들을 먹고 죽은 사람들도 있고 그랬다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꿀꿀이죽이라는 것도 있었고.

 

“옛날에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이라는 얘기 꺼내려고 하면

젊은이들은 열 번 더 들으면 천 번이겠다며 떠나버릴 거야.

그런 줄 알면서도... 제 생명이 귀해서 최상품만 골라 먹겠다는 세대를 보며

조악한 먹을거리나마 양껏 먹지도 못했는데 아직껏 살아있는 우리들이 스스로 대견해진다고.

고개를 두어 번 돌린 후에 소리 안 나게 입술만 달싹거리며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그때 지하는 그랬다.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그 전에는 그런 말 없었던가?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이라고.

하모, 백성이야 먹는 걸로 하늘을 삼는다니까.

 

 

8071004.jpg

 

 

김일성이 “나의 소원은 모든 인민에게 쇠고깃국에 이밥을 먹이는 것”이라고 한 말은

진정이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 쪽에 사는 인민들은 그때도 지금도 굶주려 죽고 있다.

“우리가 주겠다고 그랬는데 저들이 받지 않겠다고 그랬다”는 남쪽 관리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는 대답이 똑같구나.

 

밥이 하늘인 건 맞는데, 그래서 맑은 하늘만 받겠다고?

박노해, 한때 나를 참 부끄럽게 했고 좋아하던 사람이기도 했는데

촛불아 모여라? 그건 아닌 것 같아.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미친 소를 타고 달리는

     앞이 없는 미래는 끝나야 한다

     나는 살고 싶다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박노해, ‘촛불아 모여라’ (부분)-

 

 

8071006.jpg

 

 

고빗사위 지나 긴장 풀린 고관들이 “괜히 쫄았잖아?” 그러며 스테이크 먹는

“우와 이렇게 맛있는 걸...” 그 꼴도 못 봐주겠지만...

미친 소?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어.

그것 때문이라면 애초에 촛불은 필요 없었던 거야.

 

어떤 사람이 정신과의사에게 찾아왔다.

- 무슨 일로 오셨는가요?

- 나는 내가 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아니라고 그러지만 내 생각엔 그렇거든요.

- 아하, 자기를 성찰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무엇이 문제인 줄 알면 고치기도 쉽지요.

  그런데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 송아지 적부터요. 그때부터 줄곧...

 

사람이 미친 거지 소가 미치는가? 소가 사람이 되는가?

사람들이 미쳤으니 미친 세상 되는 거지.

 

 

8071003[1].jpg

 

 

사방에 전선을 만들고서야 내 한 몸 지키기 어려운 줄 알지만...

누구라도 잘한 사람은 없는 것 같구나.

그때, 1960년 4월 19일, 화동 학교 다니던 나는 경무대 뒷길-삼청동 올라가는-에서

데모대의 구호를 듣고 있었다.

“이놈 저놈 다 틀렸다 국민은 통곡한다.”

 

오렌지 시대?

붉지도 않고 노랗지도 않다는.

그럼? 주황이겠네!

주황(朱黃)은 주이기도 하고 황이기도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닌가?

 

 

8071005.jpg

 

 

그러니 분한 김에 “이놈 저놈 다 틀렸다” 소리 한번 질러봤지만

이 혼란한 세상 분열된 나라에서 “당신도 옳습니다. 제가 너무 제 주장만 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