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시대 3
더워 잘 자지 못했는지 창이 밝아 눈 떴지만 개운치 않다.
불살계를 받은 건 아니지만 간밤 도륙이 맘에 걸린다.
더우면 바퀴들이 활발해지는지 불끄기 전인데 많이도 돌아다니네.
눈에 띄지 말지 보고서야 내버려둘 수 없어서...
출근길에 꽃이 많아 마음 밝아진다.
{예전에야 꽃들이 이렇게 흔하지 않았지.}
응, 바야흐로 오렌지 시대?
활련, 나리, 원추리, 유홍초, 능소화, 금잔화, 꽈리, 호박꽃...
싱싱한 초록조차 압도하는 검푸름이 힘겹게 여겨질 때
그런 색깔이라도 있으니 고맙다.
꽃이 아름답다는 건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 판단.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건 꽃 같지 않은 사람들 소원.
{~ㅆ으면 좋겠다는, 그래야 하지 않겠냐는.}
예전에 박노해는 ‘광어와 도다리’라는 시를 통해서 “이제는 도다리 시대”라고 그랬는데
그때는 “그래, 참, 어쩌면, 맞아...” 그런 감탄도 있었는데
{그건 내가 100m 경주에서 20m 쯤은 앞에 나와서 출발했다는 부끄럼 때문이었지.}
그렇게 사회경제사적으로 파악한다면 분노와 한풀이에 불과하고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 출현을 통해서 대리만족도 있었을 것이다.
오렌지 시대라는 건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 A or B)”는 선택의 강요가 아니고
“이것만 아니고 저것도(both A and B)”라는 포용의 설득이
생각의 틀과 더불어 사는 길(倫理)인 세상이라는 얘기.
성향이야 보수적일 수도 있고 진보적일 수도 있지만
좌빨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가름은 없어야 하겠네.
{분단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태생적 결함을 안고 있긴 하지만...}
서구 사상사는 동일율과 모순율이라는 논리적 법칙의 궤적이랄 수 있지만
{A는 A이다, A는 Non-A가 아니다}
우리야 진/위라는 이치 논리(two value logic)로 생각해오지도 않았고
음양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태극이 국기로 채택될 정도로 상극, 배타의 문화가 아니었는데...
한때 ‘퍼지(fuzzy) 이론’이니 하던 얘기들도 하더니 언제 수그러들었는지?
흐릿하면 트릿한 줄 알지만
그래서 편안한 것 아닌가?
노랑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어서
샛노랗고, 싯누렇고, 노릇노릇, 노르끄레, 누르스름, 누리끼리, 누르죽죽...
거기다가 붉은 물감 몇 방울을 떨어뜨리게 되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배합의 경우들이 생겨날 것이다.
어린 빈센트가 삼촌과 함께 마차를 타고 석양을 바라보며 가고 있었다.
“얘야 저 붉은 해를 좀 보려무나.”
“저건 노랗다고 그래야 하는 거예요.”
아니 얘가... 그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썩 언짢아졌다는 얘기.
아마도 그때 “우리 그럼 ‘주황’이라고 그러면 어떻겠니?”라는 말로 화해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양극화는 골수에 사무친 난치병이 되었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는데
공룡여당의 지원을 받는 대통령과 힘없는 야당 대신 극렬시민세력이 맞부딪치며
끝없는 소모전으로 국력과 우리의 마음밭이 피폐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청자라고 새파란 것 아니고
백자라고 하얗기만 하지 않던데
그런 회청색 유백색의 우리 심성으로
부딪쳐도 아프지 않게 장난하며 살면 좋겠다.
{시작했기에 끝을 맺으려다 보니 장황하게 되었네
일부러 비공개로 놔둘 것도 아니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