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꽃
1
별난 데이트였네.
주말, 갈 데는 없고 더워 축축 쳐지고, 점심 들고 눈 좀 붙이게 되었어.
외할머니께 “그때 제가 너무 했지요?” 그러며 빌고 있었네.
좋은 것 놔뒀다가 상한 다음에야 드시는 분의 그릇을 빼앗아 내다버리겠다며 포악질 부리곤 했지.
곰팡이 걷어내고 먹어도 괜찮더라고.
해서 할머니의 용서에 힘입어 화해하고 같이 나가 걷고 있었어.
응? 할머니는 어디 가시고 웬 묘령의 여인과 팔짱끼게 되었네?
{장소는 음 기억난다, U of Toronto 캠퍼스에서 St. George Station으로 가는 Philosopher's Walk.}
누구지? 그런데 쪽팔리게 이 더위에 외투는? 아니 콜록쟁이잖아?
아 당신 시몬느 베이유, 웬일로?
뛰어난 지성이었지만 반지성주의자이었고... 뭐 그럴 수 있겠고
평화주의자이었지만 스페인 내전과 반 나치 저항에 참여했고... 그게 맞는 것 같아
삶을 사랑하면서 죽음을 사모했다는... 그것도 말 되지?
그렇게 모순덩어리.
{다 읊자면 숨차서 그렇지 정말 ‘말도 안 돼’로 똘똘 뭉친 존재였다고.}
어떤 철학자는 숨쉬기를 거부하고 별세했다는데
그 여인은 영양실조로, 결핵으로, 먹는 게 미안해서 먹기를 거부하다가 갔다네.
왜? 요즘 내 꼴 보니 제자 삼을만해서 하림(下臨)하셨나?
사랑하기에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분께서 찾아 나서긴.
2
없던 시절 누룽지라도 얻은 녀석은 집안에서 먹지 않고 들고 나와 애들 앞에서 야금야금 먹었다.
똥개도 뼈다귀 하나 발견하면 물고 튀기 전에 다른 개들이 쳐다봐주기를 기다리더라.
그렇게 여행 한번 다녀오면 뻐기며 기행문 쓰는 게 언짢아보이더니만...
아 고마워라 돈 안 들이고 갔다 온 기분 간접경험으로나마 누릴 수 있으니.
진주 자린고비가 매단 조기 보며, 아니 며느리가 “고등어!”라고 외치는 소리 들으며 밥술 뜨듯이
밥집 맛집 기행 같은 걸 보며 침 삼키다보면 밥 한 사발 거뜬히 비우겠던데.
아씨시는 한번 가보고 싶었어.
성 프랜시스의 자취 따라 “사이비체험이라도...” 라는 기대가 있었으니까.
꼭 “신 포도는 안 먹어”라서가 아니고
탁발 성인은 화려한 대성당에서 쫓겨났을 테니까 가서도 못 뵐 것이고.
작은 꽃을 보러 어디를 가겠냐고? 들에 가면 되거든.
해서 나는 작은 꽃들 더욱 예뻐하겠고
들에서 태양의 송가를 부르고 죽음까지도 노래할 것이다.
아무나 성인(saint)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성인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거든.
{사람들이 시성(諡聖)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
그동안 궁상떤 게 부끄럽지만...
우리가 사는 데서 가까이 있는 이들 올해 얼마나 죽어나갈는지...
그거 아니?
만원이면 옥수수 20kg을 살 수 있고
그걸 100명 어린이들이 하루치로 먹을 수 있고
한 가족이 한 달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