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기억
어제 바람이 좀 심했지만 거기에 매운 기운이 섞이지 않았다.
이러구러 겨울이 갔나보다 했다.
오늘 비가 차다.
눈이라면 이렇게 시리지 않을 것이다.
찬비는 늦가을에 겨울채비가 부실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쯤으로 내리는 것이지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어딜? 아직 일러.”조로 훼방 놓는 게 아닐 텐데도.
지난겨울-아직 지나지 않은 셈인가-은 남부치고는 제법 추웠다.
영하 10도-섭씨- 아래로 내려간 적도 며칠, 얼음 얼 만한 날씨는 수시로 찾아왔다.
얼음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푸나무는 어찌 되었을까?
대개 살아남았더라고. {큼지막한 종려나무 몇 그루 아깝게 갔지만.}
그렇지 뭐, 힘들다고 종말은 아니니까 ‘Frühlingsglaube’로 사는 거지.
가족의 축일(祝日)이라 꽃을 사러 나갔었다.
촌놈은 장미가 제일인 줄 안다니까...
그런데 꽃잎 끝이 조금 까졌네, 피기도 전에 시들기 시작?
고르다 보니 다 조금씩 흠이 있더라고.
뭘 찾는데? 완전한 장미? 없음.
생생한? 하루 지나면 다 마찬가지.
좋을 때는 다 좋고 그때 지나면 다 그렇고.
장미의 기억?
장미는 다시 필 것이다. 지금도 피어있는 곳이 있다.
고를 수 없도록 아름다운 것들이 지천이다.
그러니 ‘그 장미’의 기억이라 해야 되겠네.
‘더 고와서’라는 이유 없이.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그때뿐이어서, 그때 유일했기에.
{아 그때 다른 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그리고 그 장미는 기억 속에서 뭘 먹고 자라는지 점점 예뻐진다.
베란다에 방치했던 돌 이사 나가며 아까운 생각 들어 가지고 왔다.
닦고 칠하고 틀 맞춰 놓으니 수석(壽石) 전(展)에 출품해도 되겠네.
돌은 잊혔어도, 여럿 중 하나로 묻혔어도 찾아내어 가꾸면 원형으로 돌아오데.
{아니, 비로소 멋지게 되지.}
꽃은?
아름다웠다는 기억은 있어도 재생할 수는 없거든.
그럼 너는 내게 있어 돌이 될래, 꽃이 될래?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못됐다.
누가 선택하는가? ‘너’가 아니라 ‘나’란 말이야.
문지방 양쪽으로 발을 걸치고 서서 “내가 지금 들어오게, 나가게?”를 남에게 묻는단 말이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꽃이다.
너무 짧단 말이야.
Ah, non credea mirarti/ si presto estinto, o fiore...
Preserved flower로? 그건 아니지.
졌지만
‘그 장미’로 영존(永存)하니까.
{더러 잊힐 때도 있지만, 들여놓은 돌로 남아 있으니까.}
The Rose (Bette Mid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