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갈아탈 버스 기다리다가 비를 맞고
1
때 빼고 다린 후에 열 번 입을 수도 있는데
세탁하고 처음 걸친 옷에 비가 쏟아지다.
속주름 날 세운 건 후줄근해지지 말자.
2
여의도(如意刀)로 깎아낸 게 너는 아니구나.
{婦德, 婦言, 婦容, 婦功의 女有四行이야 내가 할 말 아니지만
몸매라는 저질틱한 걸 앞세우지 않더라도 맵시, 마음씨, 말씨, 솜씨의 네 씨를 두루 갖추면 좋기야 하지.}
주제에 성미까지... 언짢은 적 많았는데
보고 싶은 건 너구나.
깎고 다듬는 건 내 뜻이었고
너는 너대로 이구나.
3
작달비에 개울물 불어나듯 왈칵왈칵 솟던 그리움도
물 빠지면 마른 바닥 드러내더라.
‘그립다’는 말은 보고 싶다, 생각나다, 아쉽다, 미련을 두다, 그런 뜻이겠네.
거리를 좁히거나 돌아선 임 끌어당길 힘도 없으니까
하겠거든 ‘사랑한다’고 말하지.
그런 부담스러운 말 쓰지 말라고 신경질부리거든
그냥 친구로 지내면 안 되겠냐고 달래거든
강등되느니 사표내기로... 그러다가
그래도... {속으로만}
그때는 그랬었다는 얘기.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마른강-와디- 같지 않은가 싶다.
4
조회인가? 비 맞으면서도 저렇게들 나와 있구나.
마음 다잡고 하루를 견디고 혹은 투쟁하자는 거겠지.
코스콤 비정규직 노조의 천막 농성이 열 달을 넘어섰다.
알리안츠 생명 노조의 파업도 여섯 달이나 끈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지나가면서 저들을 보아왔다.
섬뜩한 적도 없지 않았지만 너무 안쓰럽구나.
학교 나와 좋은 직장이라고 잡았을 것이고
고정수입이 있으니 그에 따라 가계 경영과 계획이 있었으리라.
어떡하니 저들 가정?
쟁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만, 노사, 정규직/ 비정규직 이해가 상충하니까
그 집단이기주의의 원죄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분쟁은 그치지 않으리라.
여의도 얘기는 아니지만... KTX 승무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오기와 슬픔만 남은 이들에게
그저 꼴 보기 싫다고 “이제 그만들 하지, 지긋지긋해”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누가 지긋지긋하다는 거냐, 누가 하고 싶어서 저러겠냐?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슬퍼할 줄 안다.
감정순화작용으로 게으르고 사치한 눈물을 흘리고는
나누거나 같이 아파하지 않으면서
빼앗기거나 아픈 사람들을 미워하고 나무란다.
꽃잎이 비처럼 뿌리던 어느 봄날 버스로 지나치다가...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그런다.
나도 ‘비정규직’이지만‘오육도’라는데... 이 나이에 염치없다.
5
그래도...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