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집에서 기다리는 이 없지만
밥을 지어야 하니까, 배고프기도 하고 졸리기도 하니까
환승 정거장에서 습관처럼 머뭇거리다가
명쾌하게 결론 내리듯 {그렇게 슬픔을 자르는 데에는 이골이 났거든}
험, 얼른 집에 가야지!
그래도 모처럼 하늘이 푸르기에, 비 머금지 않은 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기에
여의도공원에 부용화가 몇 개나 폈을까 재고조사도 하고
{종일 발품 팔아도 그새 피고지고 그러니까 정확하게야 헤아릴 수 없지.
어어~ 하다보면 오백만 표 차이가 10% 대로 되는 게 잠깐인데 뭘 붙잡아 매어둘 수 있으랴.}
둔치를 물들인 달맞이꽃이 근래 퍼진 미국산 수입품인지
사십여 년 전 바닥 드러난 남대천에서 피던 류와 같은 건지도 살피고
나리꽃에 징그럽게 달린 검정씨알들도 털어내고 그러다가
은비늘이 금빛으로, 주홍으로, 아주 캄캄해져서 보이지 않게 되면
싸고 맛있는 부대찌개 하는 집 찾아 들렸다갈 이유는 백만 가지나 된다.
{결론은 이미 난 거였지만...}
숲에 다녀온 지 참 오래 되었다.
서울을 벗어날 때까지만 차를 타고 밤길을 걷고 또 걸어
새벽에는 “내가 왜 여기 있지?” 하는 숲에서 발견되면 좋겠다.
멀어져 감을 다행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아침
그리움의 안개 걷혀 기다림조차 필요 없이 되고
서러움의 구름 자취 없이 사라졌을 때에 터지는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아 해바라기 아니라도 살아있는 것들은 다 향일성 아닌가?
지상의 날들이 너무 짧아 서럽다는 매미들이 한꺼번에 떠나버린다고 해도
숲은 여전히 시끄럽거든.
다 바스러지지 않은 가랑잎들 뒤척이는 소리, 솔바람, 산새, 풀벌레 울음, 개울물 흐르는...
세미한 소리들도 합치면 기세가 되던 걸.
그러다가, 그러니까 고요하기에 오히려 작은 소리들이 크게 들리다가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가 단칼에 왜무 자르듯 휴지부를 지키는 것처럼
일제히 소리들이 정지하고
긴장된 침묵 완화되며 스며드는 평화.
처음엔 사랑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사랑일 것이다.
호기심과 흥분이 가신 것뿐이다.
기다리던 버스 오지 않아 생각이 길어졌지만
그냥 집에 가기로 했던 거니까.
복날 다락방이 덥긴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