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면 어때
휴가 간 이들 많아 빈 사무실
할 일 없어도 시원한 게 어딘데 그러며 나와 꼬박 지켜 앉았다가
주말이 되니 가 있을 데가 없어졌다며
조금 어두워진 마음으로 나선다.
길 건너로 버스 네 대 지나갈 동안 타고 갈 방향으로는 소식이 없다.
막혀 못 오는 걸 어쩌란 말이냐.
홧김에 차를 사? 생각도 말아야지.
자가용은 막히지 않나? 저는 퀵서비스처럼 숑숑 빠져 나갈 수 있나?
기다리면 어때
올 줄 알면.
비 그친지 언젠데 은단풍 잎들에 달려있던 물방울 몇 개가 그제야 생각난 듯 떨어지다가
응? 한 녀석은 속눈썹에 내려선다.
깜빡깜빡 주르륵. 그러고 보니 이런 걸 두고 “아마도 빗물이겠지♪”라고 그런 거구나?
치켜다보니 까마득하니 솟았는데 수피는 별로다.
젊어 보인다는 얘기. 주름이나 생채기가 없다.
어쩜 여자애들 드러내놓고 다니는 다리가 그리도 깨끗한가.
긁힌 적도 없고, 하다못해 뭐가 나거나 모기 물린 적도 없네?
보기 좋은 게 맛도 좋다지만
흠집 없는 과일만 고를 것도 아니더라고.
{못 말려 극성들 제 꾀에 넘어가라고 일부러 벌레 파먹게 한 가짜 유기농 식품 말고.}
박형준 시인이 신춘문예에 당선(1991), 등단케 한 시 ‘가구의 힘’에서 그랬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 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어쭈 25살에? 그렇게 시인은 다 살아본 것처럼 애늙은이로 말하더라고.
새로 들일 것도 있고 도리 없이 바꿔야 할 것도 있지만
이사 횟수만큼 생채기 하나씩 새로 얹은 추억꾸러미 끌고 다니며 같이 나이 먹어간다.
{이거 뭐 곁가지네만, 박군, 우리는 제니쓰 라디오로 유엔군이 어디까지 진격했는지를...}
{그는 또 “空中이란 말 참 좋지요” (‘저곳’) 라고 그랬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라는 패러디도 뒤따랐다.
에휴, “공00 참 좋지요”는 아닌데 왜 한나라에서 희색만면인지?}
‘고물의 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딱히 고와서도 아니고 사정없이 흉보는 사이라도 그렇지
오래 산 사람과 더 오래 같이 사는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익숙하다면 흉보지 않는 게 좋은 거라고.
Vincent Van Gogh
고개 젖히고 오래 있을 수는 없으니까 운동하듯 아래로 꺾었는데
모니터용 안경을 바꾸지 않고 나왔나보다. 가까운 데 있는 게 잘 보인다.
꿈틀거리는 지렁이에 달라붙은 개미 몇 마리 “이게 웬 떡인데?” 힘겹더라도 놓을 수 없지.
들여다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 살자고 하는 일. 죽을 때까지는 살자고 그러는 일.
“버스 온다!” 그런다.
올 것은 오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이수동
마포대교 건너가면서 생명보험 광고 사인을 또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