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에서
받는 이 없어 던져버렸던 사파이어가 거기 있었구나.
건져내어도 줄 이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냥 그렇게 있어라.
지금껏 잊고 지냈는데 이제 와서...
서해 이름 없는 바닷가 어지러운 모래밭에서 이렇게 서로를 찾아낸 것도
억만 분지 일이라는 믿기지 않는 확률을 두고 하늘에 감사할 일이지만
흥남 철수 후 반 세기를 지나 다른 짝과 자녀손들을 두고 사는 이들도 아니고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라는 속다짐이야 그때 감정이었을 뿐인데
쳐 죽일 듯 달려들었다가 도리 없이 부둥켜안고 얼음 녹여내는 일 일어나지 않았다.
모르는 사이인 양 무심한 듯 지나치고는
{잠깐 눈앞이 캄캄해져서 몇 걸음 지나치게 된 것이었는데}
돌아서지 못했다.
내처 갔다.
꽃들에게:
1. 찾는 이 없는 데 핀 너를 보고 갔다고 다시 올 걸 기대하지 마.
너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인생을 허비하지 마.
2. 스텐카 라진은 동지애나 혁명의 명분 때문에 공주를 물에 던진 게 아니고
숭배자들에 둘러싸여 사랑을 몰랐던 여자를 가르치기엔 시간이 너무 모자랐거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날
가는 길 그냥 가는 길에
태안 앞바다에서 수백 년 숨어있던 청자가 몸값을 수백 배 올려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광섭의 시제에 부친 김환기 그림
덧칠하는 게 아니고
지우고 다시 그리는 게 아니고
그러니 쌓임(積)이 아니고
젖은 채로 섞여서 번지고 퍼지며
한 번도 마른 적이 없는
부서져야(破) 하리 알갱이로 남지 않게 녹아져야 하리
그렇게 적시고 또 적시며
닿는 데까지는 축여두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