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기 (一週忌)

 

이장

 

꺼무스름하다고 크게 잘못된 줄 알고 혀를 차는 이들도 있더라마는

그게 어떻다고? 잘 구운 할라(Challah) 빵 빛깔이구먼.

 

아우 식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 팔 걷어붙이고 수습하지는 않았는데

쓸고 어루만지고 보듬고 싶었다.

{어머님 생전에 한 번도 씻어드린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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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

 

가족이라고 맨 앞줄에 앉아 보낸 이들 이름과 함께 리본에 쓴 ‘追慕’라는 글씨를 보며

“대강 써도 예쁘게 나오는 글자이구나.”

“사랑은 다 추모이지. 당시는 욕정이고 지나간 다음에 그리워하는 것 아닌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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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도 않았던 이들이 직함 때문에 순서를 맡아 의미 없는 말들을 뱉는다.

삼투압으로 스며드는 감동, 희미한 웃음자락 입가에 스쳐가는 추억의 상기

그런 얘기들 나누다가

눈을 들어 언제 물이 빠져나갔는지도 모르는 개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인사 나누면 됐지.

기쁨은 나눌 수 있어도 슬픔은 사적으로만 누릴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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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

 

22년을 기다려 나란히 누우셨네?

녀석, 아무렴 여기 이러고 있겠니... 버~ㄹ써 같이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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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il Nolde,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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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사바트 샬롬(Shabbat shalom)”이라고 인사 드렸다.

{“안식의 평화를 누리소서”가 적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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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위태한 산길에서 만난 짐을 가득 진 나귀의 목에 매인 방울에서 여리고 맑은 종소리가 날 때에

같이 나타난 작은 체구의 촌사람이 길을 양보하며 “나마스테!” 할 때 발하는 평화라니.

아버님은 “그거 다신교에서 쓰는 말 아니냐?”라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쩝” 그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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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뵙겠지만

“자이지엔(再見)”은 좀 그러네?

 

 

떠나기 전에

 

산 사람들끼리라도 그렇다.

 

보고 싶다 그러다가

보면 뭐 하게? 그러고

피식 웃다.

 

끊을 건 없어도

더 지음도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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