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가고 1

 

1

 

그 참... 몰려드는 서늘한 바람에 물 맞은 개처럼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지나가는 아이 짧은 티 아래 드러난 배꼽이 오그라든 분꽃 같다.

 

 

8082201.JPG

 

 

태풍 ‘00호’라는 이름붙일 만하든지 그저 그만한 것이든지

센바람 큰비 한차례 다가왔다가 늦더위 씻어내면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이다.

 

기대는 있었지만 약속한 건 아니니까...

그대와 함께 바다에도 숲에도 가보지 못했다.

여름 또 올 거니까. 여름 아니라도 되니까.

문제는 내일 일을 모르니까. 내일은 내게 속한 게 아니니까.

보지 못할 수도 있겠네?

 

 

8082202.JPG

 

 

이상하다. 집안은 아직 덥다.

머리를 구을 것 같은 복사열과 뒤통수에서 땀이 송송 배어나오는 것도 여전하다.

환지통(幻肢痛)인가?

 

 

 

2

 

광염(狂炎)이 수그러들자 옥잠화와 비비추가 꽃대를 다시 올린다.

선선해져서 살아나는 것들도 있고 제 때가 지난 줄 알고 비켜주는 것들도 있다.

“백일홍이라고 백일 피어있어야 된다는 얘기 아냐” 소리 듣고도 더 살아야 하는지?

{아직 나비가 찾아오는데도...}

해바라기는 들어찬 씨앗들이 무거워 힘겨워한다.

{직립원인에게는 머리가 큰 짐이다.}

어쩌랴 좋은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서 여름의 잔해를 서둘러 치워버리는 손을.

 

 

8082204.jpg

 

8082203.JPG

 

 

전성기는 쇠퇴를 전제로 한다.

가장 아름다운 때는 부패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 때.

종말의 시작은 시작할 때이지만

극성기(極盛期)가 되어서야 눈치채더라고.

 

 

8082205.JPG

 

 

 

3

 

마루에 나란히 앉아 달빛에 옷자락 적시고 싶다.

간밤에 다 쏟아졌더라도 오늘밤에도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할 것이다.

사랑은 별만큼 많아 다함이 없을 것이다.

 

 

8082207.JPG

 

 

 

4

 

퍼붓다가 그친 비 다시 내리려하는 하늘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눈웃음 뿌렸다.

 

 

8082206.JPG

 

 

내리는 거니까

은혜이니까

선물이니까

좋고 나쁨 많고 적음 가릴 것 아니고

감사하다.

사랑은 그렇다.

 

 

808220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