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가고 2

 

1

 

담 밖으로 뻗은 가지에 꽃망울 달렸던 때가 언젠데

꽃 떨어진 자리에서 살구 익어가던 때가 언젠데

그렇게 힘들었던 여름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고

이제 가을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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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랜 빛깔로 꽃밭에서 버티는 것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 같은 것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땅만 보고 걷다가

“앞 좀 보고 다니셔”라는 호통 듣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먼저 본 사람이 피해야지.}

탈레스는 별을 바라보다가 개골창에 빠지고는 “제 앞이나 살필 것이지” 핀잔 들었다는데

신코만 보며 걷다가 다친 사람은 저 하늘 너머를 추구한 것도 아니니 꼴이 말이 아니구나.

 

떨어진 분첩 하나 보이기에 피해 디뎠다.

누구 볼을 두드리다가 닳아 용도 폐기되었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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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창한 엉터리들을 다 용서하고 떠버리들과 같이 지껄이고 말더듬이 흉보며 닮아가더라도

참지 못하는 게 하나 있는데 이 백성 목소리가 너무 커.

{그래서 어쩔 건데? 견뎌야지.}

애어른 할 것 없이 다 악쓰며 사니 말이야...

버스 안에서 제 주민번호, 은행 명, 계좌번호 등을 전화로 몇 번씩 복창하는 아저씨도 있고

{어떡하지? 그냥 외워진 걸 지워버려야 하는데...}

제 아이 야단치는 게 권위정부 시절 취조관의 호통 같은 아줌마도 있고

제 친구에게 남친과 있었던 일을 모션까지 써가며 자랑하는 여자애도 있다.

 

가을에는 소리들 좀 죽였으면 좋겠다.

큰소리 줄여 여린 소리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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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없이 신문 읽으시던 외할머니는 “나는 귀가 절벽이라”고 탄식하셨다.

못 알아들으신다고 고함치다가 뉘우치는 마음으로 다가가서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씀드리면

개화(開花)를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듯 얼굴 전체로 웃음이 퍼져나가게 기뻐하셨다.

 

소곤소곤 말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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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과 한 번 받은 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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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몰랐던 시절에 불렀던 이별노래들

사연 담지 않은 채 다시 불러보고 싶다.

 

마른 웃음으로 그리움 지우며 일어나는데

왜 땡볕에서 갑자기 일어나면 몰려오는 현기증 있지?

머리 속은 하얘지고 눈앞은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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