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4 토론토를 그리다

 

한 번 들리게야 되겠지.

떠난 지 십오 년 되었다만 내 아직 그 나라 시민인 걸.

이십 년 살았던 흔적 더러 남았을 거라.

바래기야 했지만 아주 없어졌을라고?

 

     지나간 모든 날들을 스스로 장미빛 노을로 덧칠하면서,

     제각기 무슨 흔적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다하면서.

 

     -신경림,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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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 Island에서 바라본 Downtown

 

 

토론토의 가을은 너무 짧다.

여름 다음에 찾아온 겨울에 황당한 표정 짓는 이들이 많다.

 

그러잖아도 조락(凋落)의 계절이라는데

그 급격한 변화는 허무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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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거기?

                          Don Valley Pkwy를 타면 옆으로 Don Mills Rd.가 따라가는데

                          시내에서 지나가며 보기로는 그 동네 단풍이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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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nybrook Park, 70년대에는 주말에 처녀총각이 거기 가면

                           고기 굽는 한인들 모임 아무 데서나 환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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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안 됐으면 안 되는 거니까

가을에 시작하려 들지 말게.

너무 짧잖아, 겨울이 오기 전 햇볕 받을 날들이.

싹은 날지 모르지만 자랄 날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더러 씨 뿌리는 사람은 봄에 거두길 바라며 뿌리는 거지만

인생에는 봄이 다시 오지는 않으니까.

{그런 믿음 있는 이들이라면 달리 생각할까?

-저 좋은 낙원 이르니 내 기쁨 한량없도다

이 세상 추운 날씨가 화창한 봄날 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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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ham, 에헤야 호박넝쿨이 뻗을 적만 같아서는

 

 

사람들 만나면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런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훗날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침전물 떠오르듯 생각나는 일들이 있고

무슨 일이 먼저 다가오고 그때 얽혔던 사람 얼굴이 따라오기도 한다.

‘토-론-토’ 하고나니까 이젠 늙었을 얼굴들 푸근한 눈으로 다시 보고 싶다.

 

먹고 싸고 그러듯이 새로 인사 나누는 얼굴만큼 잊는 얼굴도 있고 그런 건데

잘 지우지 못한다면 그것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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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에는 곱게 단풍지는 나무들이 없었다.

 

 

고양이는 장소에, 개는 사람에게 애착한다는데

사람이야 같이 지내던 사람과 살던 곳 다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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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rl Haig High School 근처에서 살던 셋집

                           제대로 난 침실이 없을 정도로 작았으나 뒤뜰이 아주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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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5년에 일 끝나면 쪼르르 달려가던 곳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가장 많은 stock을 자랑하던 곳인데

                            이제는 쪼그라든 매장 하나 덩그라니 남았다고.

 

 

늘 염두에 두는 건 아니고 불현듯 생각나고

선선한 바람 불 때에는 그런 회상의 빈도가 잦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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