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5 빛

 

뉴턴이 그랬듯이 물리학자들은 그렇게 설명할 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매 운동(motion)이 있었고.”

‘창세기’는 과학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냥 “아멘!” 하면 된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8090401.jpg

 

 

빛은 무색이지만 빛깔(色彩)을 있게 하고 빛깔로 나타난다.

{우리말로는 빛과 빛깔을 혼용, 호환(interchangeable)하는 셈이다.}

빛의 화가-누구는? 그림쟁이라면 다 그렇지 않은가?-라는 폴 세잔느의 말:

“빛은 재생할 수 없는 것이지만 뭔가 다른 것, 즉 빛깔로 제시되어야 한다.”

 

빛이 없으면 꼴(形)을 알 수 없고 빛깔이 없이는 생김새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는다.

 

 

8090402.JPG

 

 

다른 맥락이지만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은 그랬다.

“아름다움은 얼굴에 있지 않다; 아름다움은 마음이 품은 빛에 있다.”

 

 

8090403.jpg

 

 

 

수색에서 산 적이 있다.

샛강, 난지도, 모래내에서 놀고 멀리는 화전과 능곡까지 걸어 다니기도 했다.

그때 ‘水色’이라는 이름이 어찌나 좋든지... “‘물빛’으로 하지 그랬어?”라는 생각도 들고.

 

아 가을인가.

‘秋色’이라는 말 한글로 가을빛이라 하지만 그냥 ‘갈빛’이라 그러면 더 낫겠다.

 

{갈빛은 갈(去, 往, 衰退) 빛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8090404.JPG

 

 

 

누가 정오의 태양을 직시할 수 있겠어?

밥 짓는 연기(暮煙) 오를 때쯤 뉘엿뉘엿 기운 해라야 만만하게 꼬나보듯 하잖아?

그렇게 수그러들고 스러지는 빛이 억만 화살과 滿天花雨로 쏟아질 때가 좋더라.

눈물 배어나오도록 곱더라.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 짜내어 시각마다 달리 칠하다가

가만빛 땅거미로 내려앉고

이내 팔레트 빤 물처럼 빛이 빠진 빛깔, 그러니까 검정이 되더라.

 

 

8090405.JPG

 

8090406.jpg

 

 

 

해 떨어지기 전 잠깐 좋듯이

가을 참 좋다.

갈빛 잡지 못해

더 그럴 것이다.

 

 

8090408.JPG

 

 

 

정조 때에 정 아무개라는 나무꾼(鄭樵夫)이 있었는데

응? 사대부도 아닌데 글솜씨가... 꽤 괜찮은 시인이었더란다.

나무꾼이니 “나뭇짐 위에 쏟아지는 가을빛”이라 하겠는데

{翰墨餘生老採樵 滿肩秋色動蕭蕭 東風吹送長安路 曉踏靑門第二橋}

 

 

8090407.JPG

 

 

누구 어깨라도 갈빛 소복이 쌓인 어깨를 보면 목덜미에 입맞춰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