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7 텃밭 치우기 전에
1
프로에게야 그런 게 문제나 되겠냐만
꾼이 아니라 재미삼아 작은 텃밭 가꾸는 이들에게는 그것도 고민거리라고.
어떻게 덩굴 걷냐는, 저 어린 열매들 햇볕을 이틀만 더 받으면 자라 맛이 들 텐데... 라는.
해서 낫을 대지도, 뽑지도 못하고 한두 번 돌아서게 되더라.
게다가 선선한 바람 불면 더위에 기를 못 펴던 것들이 “내 청춘 이제부터”로 되살아나네?
회광반조(回光返照)의 반짝경기지 뭐.
강계 위초산이 어떻다고 속담에까지 등장했는지 모르지만
“호박 넌출 뻗을 적 같아서야 강계 위초산 뒤덮을 것 같지”라고 그러대.
정주 사람 소월은 넝쿨 타령에서 비슷한 뜻으로 한 가락 뽑았다.
박넝쿨이 에헤요 뻗을 적만 같아서는
온 세상을 어리얼시 뒤덮을 것 같더니만,
초가삼간 다 못 덮고 에헤요 에헤야
둥글박만 댕글이 달리더라 에헤요 달리더라.
그게 맥아더가 “내 곧 돌아오리다”하며 필리핀을 떠나고 일군이 지나 반도까지 휩쓸 때는
온 세상 아카다마(赤球)로 덮을 것 같더니만
“어디 그렇게 되겠냐? 누구 맘대로...”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흥망성쇠와 무상유전(無常流轉)이 차라리 우스워지는, 해서 슬플 것도 없는 노래가 된 것이리라.
그런데 묘미는 “둥글박만 댕글이 달리더라”에 있다.
그냥 마르고 시들어 끝나는 게 아니고 뭘 남기더라고.
새끼 낳듯 작품 빼내듯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 불멸을 도모하며 재생산의 노력을 마친 후에
“다 이루었다” 그러더라고.
댕글이! {추임새 넣고} 열리더라!
평사리에서
2
뒤늦게 블로그 골목에 ‘봉숭아’들이 나돌아 다닌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의 때가 다가옴을 예감해선지...
그게 ‘봉선화’와 ‘봉숭아’는 또 다른 맛이더라고.
꽃잎이 홑잎이던 시절 김천애 님이 애처롭게 부르던 것은 봉선화(鳳仙花)였지.
나중에 좀 무지막지한 원색에 꽃잎이 몰아 붙은 것을 주먹봉숭아라고 했다.
붉거나 희거나 섞여 분홍이거나. 요즘엔 얼룩이도 더러 보인다.
이것도 봉숭아 맞습니다
원산지는 인도, 학명은 Impatiens balsamina L., 보통 Garden Balsam이니 그러고
극동 세 나라에 있어야만 할 것도 아니고 정서는 다르지만 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건드리기만 하면 터지는 씨방을 두고 ‘Touch-Me-Not’라는 이름을 얻었겠다.
어차피 터지고 씨를 쏟아내겠지만... 그게
기왕이면 건드려달라는 얘기 아닌가?
“Non t'amo piu” 그랬다고 “그 얘기 먼저 하길 바랐지”라며 돌아서면
그게 그게 사람이냐고?
건드리지 말라고 그래도 건드려 같이 울고
“나를 울게 내버려두오” 그러더라도 달래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아픔 같은 기쁨이지, 사랑의 기쁨은 아픔이기도 하지.
겨울나러 멕시코 만까지 가야하는데
도중에 날기를 거부하고 텍사스 중부에 남은 나비들의 3/4은 죽는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됐네 뭐.
달린 건 터지고
터지면 흩어지겠네.
일부러 흩뿌리기도 하고.
수류탄이 아니고 분꽃 씨
그러자면 일단 거두어야겠지.
베거나 따야겠다.
랄랄라 그러게 가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