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13 국화, 들국화, 과꽃

 

어디서 어디로 가는 걸 돌아간다고 그러는지

이제는 돌아와 국화 앞에 서서...

여기서 이태 더 보내면 한국과 외국에서 산 햇수가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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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국화를 싫어한다. 죽음을 연상한다고.

{죽음이 삶의 일부인지를 알 나이가 아니지.}

아, 오늘 사람들 손에 조화(弔花) 한 송이 쥐여지는 일이 터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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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에 56행이나 되는 장시를 외라고 해서 숙제하듯 해내고 ‘검사필’이 되었지만

내키지 않아서였는지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렸다.

소월의 시 ‘고락(苦樂)’에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칼날 위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물속에 몸을 던진 몹쓸 계집애

    어쩌면 그럴 듯도 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줄은 왜 몰랐던고.

 

    칼날 위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자기가 칼날 위에 춤을 춘 게지

    그 누가 미친 춤을 추라 했나요

    얼마나 비꼬이운 계집애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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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어려웠으랴.

가진 게 보호막이 되기는커녕 짐만 될 수도 있겠지만

 

    무겁다 이 짐을랑 벗을 겐가요

    괴롭다 이 길을랑 아니 걷겠나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보시오 시내 위의 물 한 방울을.

    (... ...)

 

    어여쁜 꽃 한 가지 이울어 갈 제

    밤에 찬이슬 되어 추겨도 주고

    외로운 어느 길손 창자 주릴 제

    길가의 찬 샘 되어 누꿔도 주오.

 

    시내의 여지없는 물 한 방울도

    흐르는 그만 뜻이 이러하거든

    어느 인생 하나이 저만 저라고

    기구하다 이 길을 타발켰나요.

 

    이 짐이 무거움에 뜻이 있고요

    이 짐이 괴로움에 뜻이 있다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다운 사람이라오.

 

 

소월도 33살에 자살했으니

조숙한 청년의 교훈시가 다 헛말이었던 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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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사례가 최근에 여럿 있었지만

보통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충격은 유별나게 극심한 것 같다.

그럴 사이가 아니었던 사람들조차 잡지 못했음을 미안해하고.

 

{예뻐도 유리성이라 깨지기도 쉬운 거구나.}

 

갔으니 어쩌랴... 편히 쉬어요.

저 하늘에는 눈물이 없네 거기는 슬픔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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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 산국, 감국 같은 게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캐나다와 미국에 사는 동안에도 들꽃과 눈 맞추러 나다니곤 했다.

구절초는 {모양이야 다 비슷하니 기다 아니다 할 것도 아니지만} 이쪽에만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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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은 아픔 헤아리자면 아홉 마디(九節)로 되겠냐만

열! 그러면 뚝 꺾어질 것 같아서

“많아 참 많아 말 안 해서 그렇지...”를 “내 겪은 고난 누가 알랴” 정도로 해두고

이제는 그만 꽃 피워내자는 구절초.

꼬불꼬불 울고불고 넘는 고개라 구절(九折)이라 했을 것이고

구월 구일(음)께 서늘한 기운이 폐부를 씻기는 날 피어 구절(九節)이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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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캐나다에 살 때는 참 여러 종류, 별난 빛깔의 과꽃으로 큰 밭을 이루기도 했다.

그게 고국 하늘아래라야 제 자리인가 싶다.

 

갈무리한 한(恨)이 몇 가마가 될는지

그래도 내게는 푸근하기만 했던 이모의 웃음 같고

웃기 전에 눈초리 찍던 남색 고름 같은 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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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좀 그렇구나.

꽃은 위로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다.

꽃은 “슬픔은 내가 질 테니 기쁨만 네가 가져가라” 그럴 것이다.

 

이제는 돌아와 붙박이별로 꽃들과 사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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