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14 분홍 코스모스

 

1

 

본 적 없는데 보고프고

한참 못 봐서 보고프고

보고 오면서 보고프고

다시 보면 보고파질까 해서 보고프고 그러다가

보면 뭘 하냐 그러며 또 다 지워버리다 보면

날밤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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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깨어있는 줄 알면서도 말 건네지 못하는 이른 새벽

헛기침하면 기척에 돌아볼까 통방을 시도하면 알아들을까 그러다가

부질없는 생각 설레설레 흔들어 털어버리고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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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마는 거지 뭐

그러면 끝난 거지 뭐

그래도 섭섭하지 뭐

 

가을은 그렇게 가더라고

극적 반전 같은 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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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섞이는 게 싫은데 섞인 것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분홍코스모스는 속없이 몸 주고 섞여버린 잡것으로 여겼지.

빨강, 하양 코스모스가 줄어드는 게 속상했지.

{빨강코스모스에서 씨 받아 ‘빨강’이라고 써놓은 걸 뿌린다고

빨강코스모스만 나오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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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생각인데

가르마 같은 들길 양 옆으로 솟은 코스모스가 전부 빨강이라면

그 사이를 헤쳐 나오는 동안 울렁거렸을 것 같아.

하양코스모스 일색이라면 어지러웠을 것 같아.

분홍코스모스가 훨씬 많은 게 참 다행인 거야

그런 게 평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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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건 그저 조금만 있어도 된다고.

순수도 소금만큼 있으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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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녹두? 그거 천덕구니였어. 왜 내 앞으로 놓인 송편은 다 그런 거였는지.

비춰보고 찔러보면서 깨 속을 찾고 싶었지만... 무를 수 없으니까...

걸린 건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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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안 들어도 그렇게 사는 거지.

입맛도 변하고 좋던 것도 ‘별로...’가 되니까

그저 그래도 그런 줄 알고 사는 거지.

그렇게 지내다보면 불편함이 없더라고.

 

좋은 거라 많은 거야.

흔한 게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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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되어서야 깨우치고

{사과할 대상은 따로 못 찾았지만}

많이 미안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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