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16 가랑잎
바람에 뒤집히면 싸구려는 별 수 없다고 저주하며 버리고
한 번 잘 사용했다고 고이 모셔둘 가치도 없는 지우산
요즘에야 판촉 사은용 선물로 거저 주는 우산들이 워낙 잘빠졌고
처마 밑 아니라도 갑작스런 소나기 피할 데는 많으니까
존재목적이 없는 게 돌아다닐 이유가 있겠냐고?
쓸모없는 게 생겨났겠냐며 모아둔 것들로 서랍은 뒤죽박죽이지만
한 번도 만원사례로 문 닫아건 적 없고
내려앉을 때까지 받아준다.
어쩌다가 원인무효의 편지가 흘러나와 가라앉은 앙금 피어오르듯 해도
찻잔 속의 소용돌이지 별 일 있으려나.
사람 붐비는 데 가보고 싶은 날이 없지 않지만
관성으로 움직이는 발길 돌릴 힘이 없는 마음은 그냥 실려 간다.
햇덧에 마음 바빠져 발놀림도 빨라지다가
지켜야 할 약속 없는데 돌아가야 할 시각이 있겠나
설핏하다가 어두워진다고 길 잃기야 하려고?
다시 만보(漫步)로.
들판의 사시랑이들에게 주먹 들어 보이며 “Solidarity!”라고 외친다.
늦사리하는 분께서 따뜻한 눈길 주며 거두실 테니까
끝물 째마리라고 놀금으로 후려치는 이들에게 혼을 내어주지 말자는 뜻.
물들지 않은 넌 뭘 모르겠지만... 내 손 맞잡아 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