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17 Georgian Bay를 그리며
책갈피에서 튀어나온 사진 한 장이 마음을 흩뜨릴 때가 있지.
Georgian Bay, Tobermory, Algonquin Park...
거기 가서 하늘 보고 물 보고 카누 타고
단풍 보고 송이 따고 싶다.
그토록 파란 하늘, 그리도 맑은 물, 그렇게 붉은 들
“그다지...”로 여겼던 게 새삼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만해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훨씬 난 형편이지만
미국이 청정 담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캐나다를 침공 병합할 수 있다는 얘기는
팔리지는 않아도 다 아는 소설이거든.}
몰라서가 아니고 알기에 등 떠밀어 보내고
그런 줄 알면서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어서
심한 말 내뱉고 돌아섰다가
두고두고 후회했더라는 말 전할 기회 없이 세월이 흐른 후에
“아무렇지도 않게...”라고 다짐하며 다가가는데 가슴이 뛰더라는 얘기.
내가 널 볼 수 없고
네가 날 볼 수 없고
나도 날 볼 수 없는
참 편리한 불투명
모르며 사는 거지
몰라서 사는 거지
알고서야 어울리겠나
그게 언젠가부터 답답해지더라
풀려나고 싶어
단풍 구경한다고 어딜 따로 가야 하는 게 아니고
가을에는 집 뒤가 보통 이렇다.
서로 거울이기에
네 얼굴에서 나를 보고
내 얼굴에서 너를 볼 수 있겠는데
네 얼굴 드러내지 않으면 날 어찌 알겠으며
내 얼굴 보지 못하는데 널 어찌 알겠냐고?
얼굴 없이 만나서 여러 시간 같이 있고
어울리고 얽힌다고 해도
알지 못하면서는 속(屬)할 수가 없거든
속하지 않으면 자유롭지 않거든
알리지 않아 알지 못한 게
불순한 거짓은 아니었다고
일부러 변명할 게 아니고
벗을 테니 같이 벗자
{보시는 대로이니 가져갈 만하면 거두시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으면 가죽옷 하나 지어 입혀 남겨두시고
그분에게야 그게 심판일 것이고
우리에게야 한숨 쉬며 품어줌이 사랑 아닌가?}
20년 살던 온타리오의 가을은 너무 짧아
단풍 구경 나들이 때를 번번이 놓쳤다만
몇 번 다니며 담았던 그림들 아렴풋하다기보다 점점 생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