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18 팔당호를 끼고
다닌다는 길, 가다가 오봉도 쳐다보고... 그런 뜻으로 외곽순환도로를 탔는데
아뿔싸, 명징(明澄)하질 않네?
가을하늘이라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만 있는 게 아니고
비가 오지 않아도 흐리고 갠 날인데 hazy, 해서 풍경사진 찍기에 적당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아.
“아침이라 그렇지 차차 안개 걷히겠지” 했는데 그러지 않더라.
아무렴 어때, 모처럼 나온 길인데 뭔가 부족한 듯 쩝쩝 소리 낼 것 없다.
점심으로는 이르지만 남양주 촬영소 가는 길에 있는 개성집에서 만두전골 먹고
수종사에 올랐다.
{차로 끝까지 가기엔 재미없고, 숨차게 가파른 길 올라가는데 차들이 빵빵거리면 김새고 그런 길.}
오래 됐고 이런저런 엮을 얘기도 많은 절인데 꼴은 초라하다.
세조, 다산, 초의선사... 그런 ‘정사’뿐만 아니고
유아 때에 자손들을 잃음을 염려하는 증조부께서 선친의 수복(壽福)을 빌며 공양미 백 석을 시주하셨다는 얘기도 있다.
은행나무 물들 때는 안 되었는데 가을 산행객들이 많아 조용하지는 않다.
공짜-다른 좋은 말도 있겠는데...- 차 좀 마시자고 해도 다실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두물머리 내려다보기 딱 좋은 관측점인데.
좁은 마당이 중창불사로 어지러운 가운데 뭔가 있어야 할 게 없어진 것 같다.
몇 안 되는 스님들 수행중인지 물어볼 사람도 없어-맨 행락객들뿐이라- 답답한 채로 돌아와서
이년 전에 갔던 사진들을 보고서야 생각났다.
귀여운(?) 해탈문이 사라진 것이다.
문을 지나간다고 열반에 들어갈 것도 아니지만...
초라해 보이긴 해도 아무렴 크고 화려한 문이어야 하는 건지...
{다른 가르침에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랬지.}
이건 이년 전 방문 시 찍은 사진
불자가 아닌 사람이 뭐라 할 건 아닌데
산사의 고즈넉함이나 도량의 경건함이 실종된 듯싶어 씁쓰레하다.
산객들에게 자리를 내어줌도 자비심의 발로인지...
그냥 시내로 돌아가기는 뭐한 시각이어서 양평으로 해서 광주 쪽으로 돌아가리라 했다.
광주 IC로 가는 길 말고
수청리, 검천리, 귀여리, 분원리, 우천리, 광동리, 오리, 도마리...를 꼽으며 지나가는.
양근대교 건너 강변 따라 가다가 “아, 저것 뭐지?”하고 들른 데가 Dr. Park Gallery.
그게 아주 물건이네!
건물은 승효상 작품, 그에 대해서야 뭐라 더할 말 있겠는가.
사람들-그게 복종하는 군인들 같아야 말이지-을 다루는 교향악단 지휘자만은 못하더라도
‘사용 공간’을 다루고 ‘거기에 그대로 있음’의 혜택을 누리는 건축가는 뭐가 부럽겠는가?
커피, 내다보는 경치, 실내 배치, 자연과 이어지는 외부 환경, 소장/ 전시 작품들 모두 훌륭하다.
아기자기, 오밀조밀... 한국인들 그런 건 잘 하니까.
의사 박호길.
“돈 많은 게 괜찮은 거구나”라는 생각 자주 하지는 않는데...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과 일치할 수는 없지만 {그러면 큰일나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좋은 거라면 {본인에게만 아니고 많은 이들에게 말이지}
-나는 ‘구제’만 생각했어. 굶주리는 이들이 쌨는데 다 처먹지도 못할 걸 독점한다고 미워했지,
‘문화’...도 좋은 거네... 그걸 위해 내놓는 사람 좋은 사람이네. 나도 이제 활빈당 제대해야 할 것 같아.-
돈도 가질 만한 거네?
그는 ‘사회 환원’이라는 말을 썼다.
“그렇겠다” 인정했다.
‘2008 양평 환경 미술제’의 주제가 ‘연기(緣起)된 구름 Inevitable Cloud’이란다.
이름 참... 과하다.
나희덕 시인이 “귀여리에는 거미줄이 많다”고 그러더만도
웬 거미줄?
하긴 팔당호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에 외줄타기처럼 가는 길이 그렇겠네.
{예전에 거기는 ‘괴내’라는 개울이 있어 참게와 장어를 잡기도 하고 그랬어.
그건 고운 찰흙이 씻겨 내려가는 바람에 늘 흙탕물이었는데 뱀처럼 구불구불 흘렀지.
거미줄 같지는 않았지.}
분원은 머물지 못하고 지나친다.
아버님 나오셨고 어머님께서 교사로 계셨던 초등학교 뒤편의 백자자료관에는 간 적 있으니까.
중부고속도로 타지 않고 구국도-서울운동장 맞은편에 있던 경기여객 버스들이 지나던 길-로 돌아오며
검단산, 떡갈봉 멀리서 바라만보고 간다.
하남시-중부면이었지- ‘마방’이 눈에 띄기에 “아 여기구나” 하고 서려하였으나
뒤에서 빵빵 대는 바람에 그만 지나친다.
퇴근길 서울로 들어와 밀리다보니 밥 때를 놓쳤다.
그렇게 가을날 하루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