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19 흔들리는 것들
「모든 흔들리는 것들에게」라는 교서를 발할 지위에 있지는 않아.
{제 목숨 스스로 끊은 자가 글을 남겼다고 제가 뭐나 되기에 세상에 고한 건 아니잖아.}
나도 많이 흔들리지만, 지금도 흔들리지만
그러니까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손 떨며 쓰는 글인데
쓴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글자를 더 그릴 것도 아니어서
그냥 몇 자만 남기려고 해.
흔들리면 돼.
사실 네가 흔들리는 건 아니야.
흔들음에 저항하지 않는 거지.
떨어짐을 거스를 수는 없잖아, 해서 만유인력의 법칙이니 하는 게 있겠지.
마찬가지로 흔들림은 흔들음에 몸을 맡긴 거지 뭐.
그렇게 마음이 흔들림도 내버려두는 거지 뭐, 어쩌겠냐고?
그렇다고 그냥 수동적이기만 한 건 아니라고.
최선의 생존방법이면서도
작은 것들의 격한 움직임 여린 것들의 당찬 반항이기도 해서
마냥 안쓰럽기는커녕 장엄하더라니까.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흔들리는 게 어떻다고?
꺾이거나 뽑히지 않으면 되겠네 뭐.
한들한들 휘청휘청 낭창낭창 나울나울 부들부들
크거나 작거나 흔들림과 떨림 없이는 부러지거나 쓰러지게 되거든.
그러니 뿌리 깊은 나무라도 그렇지 흔들림이 없이 버틸 수는 없다고.
{꼿꼿한 건 꼭꼭하는 거지. 그것도 그렇게 오래 갈 순 없지.}
실은 큰 건 큰 만큼 흔들림의 총합이 크다고.
도종환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랬다.
{“그런 말 누군 못해?” 그럴 게 아니고
다 그런 줄로 여기지만 말하지 않은 것을 끄집어내는 게 시인이니까
“맞아, 그렇구나, 시인이 먼저 말했구나.” 그러면 된다고.}
가을에만 흔들림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유난히 두드러지는 때이긴 하니까
흔들림을 바라보며 흔들림이 그리 큰 흉이 아니리라.
저 가볍게 나는 하루살이에게도
삶의 무게는 있어
마른 쑥풀 향기 속으로
툭 튀어 오르는 메뚜기에게도
삶의 속도는 있어
코스모스 한 송이가 허리를 휘이청 하며
온몸으로 그 무게와 속도를 받아낸다
어느 해 가을인들 온통
흔들리는 것 천지 아니었으랴
바람에 불려가는 저 잎새 끝에도
온기는 남아 있어
생명의 물기 한 점 흐르고 있어
나는 낡은 담벼락이 되어
그 눈물을 받아내고 있다
-나희덕, ‘흔들리는 것들’-
잘 쓴 시이기는 한데...
받아낸다고?
부러지지 않을 만큼 휘청거리고
뉘 눈물인지 모르게 섞였노라는 얘기겠지?
내 흔들림만도 힘겹지만
다른 흔들림이 겹쳐올 때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
짓무른 눈으로 보아서가 아니고
가을엔 다 그런 게 사실인 걸.
그래도 뿌리내린 것이라 흔들리지
아니라면 날아가든지 구르든지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