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20 젖은 날
Prologue
우리만 그런가? 좋은 데 사는 사람들은 괴롭지 않고?
주가폭락으로 정00 의원의 재산이 1/3이 된 것보다야 작은 일이겠지만
웬 모기가 그리 많은지 한밤에 나는 쌕쌔기 소리, 물린 자국이 고문흔적처럼 남은 팔다리...
그런 시시한 것들은 문제거리가 아니겠냐고?
대마초 같은 모기향 + 전자향을 피워 매캐한 데에서 자다보면 뇌세포 수가 급감하지 않을까?
손으로 때려잡으려다가 놓치는 적이 많아 신무기 ‘전기모기채’까지 도입했다.
테니스 라켓으로 공을 맞추듯 가까이 가며 ‘On!’ 하면 고압 충격으로 기절,
죽은 줄 알고 치우려는데 정신 차려 날아간다.
확인사살 하듯 다시 한 번 ‘On!’하면 탁, 탁, 탁 단백질 타는 냄새... 다비식까지?
간밤에 편히 주무셨...? 아닐세, 그러지 못했네.
찌뿌듯한 몸으로 출근하는데 아휴, 저 구호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끝나지 않고 굉장치도 않은 확성기를 사용하는 데도 있다.
선거철도 아니고 촛불시위도 아니고...
“촛불 복수극 중단하고 경제나 살려라. 00당” 뭐 그런 거.
용산구청에서는 한때 “떼쓴다고 안 될 일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건 적이 있었다.
건너편에 뭐가 있거든.
“민중권력 쟁취하자” “용역 깡패 박살내자” “용산구청 박살내자” 그런 깃발들.
응? 신계철 '대위'? 현역장교가 박살작전을 지휘한단 말이야?
그게 아니고, ‘신계동 철거민 대책위원회’의 준 말.
그런데, 험한 말 사용해야만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건가?
목소리 좀 낮추자. 부드러운 말로.
밝고 가지런한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1
작은 나라인데 지방마다 다른 날씨이기도 해서
‘삼남에 내리는 눈’이니 했을 것이다.
아래서는 비 온다고 ‘밖은 젖었는데 가슴은 타요’라는 문자 받고도
여기서는 그저 흐린 날로 지나는가 했더니
촉촉이 적실만큼 내린다.
Into each life some rain must fall.
{기리티? 길탄코!}
가을에는 파란 하늘과 타는 숲이 대조를 이루는 게 좋지만
비가 좀 와도 괜찮겠다.
그제서야 가을은 성숙하고 사람들 눈도 깊어진다.
“On a clear day you can see for ever” 하더라마는
맑은 날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강화에서 해주 정도일 것이다.
그보다 더 멀리 보자면 흐린 날이어야 하리라.
‘영원’을 일별(一瞥)할 수 있다면 안개 속에서나 이리라.
2
문자 하나 더 들어온다.
“우정은 산길 같아 자주 오가지 않으면 잡초 우거져 그 길 없어지리니.”
대학 동창회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는 총무의 불평이다.
“길이라면 없어지겠나 옛길 되면 찾으리다” 그러긴 했는데...
아무래도 “Long absent soon forgotten”이 맞는 말이겠지?
많이 아프게만 했는데-저는 알까?- 그칠 줄 모르는 그리움으로 남는 이 있을 것이고
받은 은혜가 큰데도 그저 그런 사이로 있다가 잊히는 이 있을 것이다.
못 본지 오래 되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를 수없이 연습했지만
보지 못한다고 잊을 수 없는 이 있을 것이다.
잡는다고 잡힐 것도 아니어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갔는데
보냈다고 끊길 것도 아니어서 찾자면 물줄 따라 내려가면 되리라.
{그때는 다 섞여버려서 옛 모습으로는 알아보지 못하리라.}
3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최영미, ‘가을에는’)
{걔 늘 발칙해, 아니더라도?}
네가 나를 지우는 소리
내가 너를 지우는 소리
(강은교, ‘가을의 시’)
{그런가?}
지워지지 않는다고 개칠하기도 할 것이다.
“시작도 아닌데... 뭐가 있었다고...” 그러면서도
지피지 못했던 장작 치우지 않는다.
모호한 호기심의 정체를 밝혀봤자
또 그렇고 그럴 텐데도.
Epilogue
내가 왜 이러지?
가을에는 다 그런 것? {쪽 팔리게 스리...}
가을뿐만 아니고 비도 내리고 해서... {그쯤에서 변명 멈추기로.}
이 비 그치면?
많이 떨어지겠지.
다들 바빠지겠지.
{모기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