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슬아씨 전별식
갔냐고 묻는 건
단체관광 인원점검시 버스에 안 탄 사람은 손들라는 얘기나 마찬가지.
가슬아씨 떠나보냈냐고 묻는 이 있어 얘긴데
언제 갔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더욱이 등 떠밀어 보낸 건 아니거든.
다 타면 사위는 거지만
흐지부지 꺼진 걸 한참 후에야 알아챈다는 건
무정에다가 비정을 합한 정도라고.
아직은 잡을 수 있는 가을의 끝자락을 붙들고...
“그러면 지금부터 가슬아씨 전별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가는 게 분명하고 잡아야 하는 줄 알면서도
어, 어 하다가 놓친다고.
다음 역에도 코스모스는 피어있겠지만
방금 지나친 역사 앞에서 하늘거리던 살살이꽃 무더기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면
기차가 속도내기 전에 뛰어내렸어야지.
어, 어 하다가 헤어지게 되더라고.
단단히 벼르며 정식으로 이별예식까지 치르고
건너간 다음에 다리를 불사르고 나서도
만나자면 만나게 되는데
어, 어 하다가 멀어진 거리를 잇자면
대협곡에 다리 놓는 토목공사만큼 더 많이 공들더라고.
하니까 안 그러리라고 여기다가 나중에 황당한 표정 짓지 말고
일단 잡는 시늉하게. 아니지, 간절한 눈빛으로 “이시렴, 부디 갈다?” 그러며 잡게.
가면 가는 거지만
어, 어 하다가 이상하게 떨어져나가도록 내버려두지는 말자는 얘기.
어쩌겠어, 잘 가라고 하는 수밖에
그러니 보낸 건데...
진이가 그러지 않던?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다냐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그럴 줄 몰라서 잡지 않은 게 아니고
별 도리 없으니까.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만해 스님 version으로 하자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그러면 일동 기립하여 가슬아씨를... (목이 메어)”
떠난다고 아주 사라지는 게 아니고
남쪽으로 내려가며 반기는 이들과 어울리리라.
그래서 섭섭하다면 그건 사랑 아니지.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돌아올 줄 믿고 기다린다지만
내가 어떨는지는 모르는 거니까.
“하냥 우옵네다”라는 마음도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