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에서

 

단풍철에 명승지에서 옛길 홀로 걷는 운치를 기대했다고?

딱 들어맞는 말인지 모르겠네, 왜 ‘緣木求魚(연목구어)’라고 하지 않던가?

바랄 걸 바라야지.

 

길은 먼저 걸은 사람이 따르는 이들 위하여 냈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길인데 어찌 혼자 가겠는가?

이 많은 사람들 왜 왔겠어, 나처럼 가을 가기 전에 그중 좋은 데라고 찾았을 것이다.

그러고 사람에 치어 후회하는 것이다.

내가 왜 좋은 델 안 다녀봤냐 하면 이런 걸 참지 못해서였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하지 않던 짓을 하는 걸 보고 뭐라고 그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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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가는 길 주변은 국내 한 군데뿐이라는-그런가?- ‘아기단풍’ 군락지라는데

그게 뭐 내장산 단풍과 차별화하려는 얘기일 것이다.

책갈피에 끼어 말리면 앙증스럽고 귀여운 작은 잎들인데

멀리서 보면 그냥 붉은 빛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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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그렇다.

“우와 저것 좀 보게”하며 가까이 가서 찍으려고 그러면

잔가지 뻗친 방향의 무질서, 도르르 말리거나 바스러진 잎 끝들을 보고 있자면

Chaos, anomie, entropy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굳이 별난 렌즈에 필터 두어 개 부착하고 포토샵까지 동원해서

선명한 붉은 색을 재생한다고 해도 그저 그런 게 단풍 사진이다.

{아내는 “단풍나무는 백 미터 미인이네요.” 그러더라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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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겠는가?

그런 데 가서 어깨 부딪히고 사람들 들어가지 않은 그림 하나 뽑기가 쉽지 않아

짜증나서 하는 얘기일 것이다.

 

{네가 뭔데? 하늘을 혼자 쳐다볼 수 있어? 맑은 샘물 독차지하겠다고?

아방궁 짓고 높은 담으로 두른 큰 부자 되지 못한 이들 어여삐 여겨

누구나 와서 어울리며 즐기라고 베푸신 천지에서

사람 많다고 골난 표정 지으면 되겠냐고?

 

그냥 “그가 왔던 데인데 임의 자취 찾아내지 못해 어지러운 발자국들을 원망했어요.”라는 얘기.}

 

바위 빛깔 때문에 홍도, 흑산도라고 그랬듯이 여기도 白巖山(백암산)인데

왜 들어앉은 절을 白羊寺(백양사)라고 하느냐?

그럴 이유 있다니까 ‘검색’ 이용하시면 알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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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을 구하지 못했다고 불평할 것이라면 언제 낯 펼 날 있을까

차선이 걸려든 날에도 감사하면 되겠다.

‘옥에 티’라 그러지만 티 있는 옥은 그럼 버릴 건가?

 

하늘이 맑았으면 좋겠는데 아니어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이면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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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 속에서 몸까지 흔들 형편이 아니었으나

그나마 발길 뜸한 부도전(浮屠殿) 거닐 때는 가락이 울리던 걸.

{경건해야 할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 왜 ‘산타령’ 말이지.

서산에 지는 해 지고 싶어 지며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들국화 한 송이 살자꿍 꺾어 산처녀 머리 우에다 꽂아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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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았어.

아암, 좋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