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待春賦) 1
어제였는지 오늘인지 달 보고는 잘 모른다.
때로는 보름 다음날 달이 더 밝기도 하거든.
十七夜月, 그게 아무래도 절정이 지났음이 드러나지만
아직 밝더라, 예쁘고.
거기에 그렇게 묶어둘 수 없는 거고
우리 다 한참 지난 줄 알지만
“나 아직 괜찮아, 그렇게 보이지 않니?” 그러면
“하모, 十七夜月 아이가?”로 추어주자.
늦게 만났으니 사랑할 시간이 짧지만
반짝이는 별 안 보일 때도 거기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듯이
영원인 듯, 사라지지 않을 듯이.
{사랑한다면서 소유하려는 사람들은 ‘재산’을 지키겠다는 거야
에이 그래서 쓰나
그냥 꽃이 피어있는 동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을}
여기는 그래, “드디어 봄!”이 터지는 감격의 순간으로 다가오지 않는
“그다지 뭐...” 쯤으로 심드렁한 남쪽이지만
지난겨울은 그렇지도 않았어.
바람 매워 눈물 질질 흘리며 다녔고
방안에서도 자판 두드리는 손끝이 시리더라니까.
이제 갔나보다.
{그렇다고 월반(越班)할 게 아니거든.
특정부문에서 뛰어나도 전체 학습능력이 따라주는 게 아니니까.}
‘프라하의 봄’처럼 “좋은 세상 언제?”를 말하는 건 아니니까
종북 좌파? 의구심 잠깐에 지레 단정하지 말게.
한반도에는 아직 멀었지? 봄 말이야, 꽃피는 봄.
제비 안 오니까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까지 기다릴 건 아니고
이제 겨우 정월 보름 지났지만 납매(臘梅)는 피지 않았냐고?
그건 그냥 척후(斥候)이고 본대(本隊) 상륙은 언제쯤일지
누가 좀 일러줄래?
여기서는 집안에서 개를 키우니까 털갈이도 안 하지만
아 조선 땅 어딜 가도 보게 되는 순한 애들, 묶어 밖에 버려둬도 모진 추위를 견딘 애들
나른하다고 늘어져 잠만 자지 말고
풀어줄 테니 어디 나들이라도.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거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은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뻐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신석정, ‘대춘부(待春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