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심사
1
첫눈이 내릴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시내는 ‘아직 아니’라도 좀 떨어진 데에는 이미 눈 좀 뿌렸다고 한다.
첫눈? ‘올겨울’에 처음 내리는 눈이라는 뜻이렷다.
눈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아 이십 년 동안 캐나다에서 눈 치우느라고, 빙판 위에서 운전하느라고 고생했다.}
‘첫-’에 높은 점수 줄 이유 없거든.
첫사랑? 어느 사랑은 첫사랑 아닌가?
그러니까 가슴 뛰는 것이겠네.
첫눈 아닌데 첫눈인 줄로 여기며 기다려지네.
고정 좌석 13개인 작은 교회에 두어 해 다녔다.
삼년에 한번 정도 눈을 볼까 그런 데 눈이 뿌린 날.
2
편지(手迹) 받아보고 싶다는 사람들 더러 있다.
감정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성실하게 답장하는 사람이라면 교통하지 뭐.
빨간 우체통, 귀퉁이 뜯긴 우표, 잉크 번진 양면괘지... 소도구 동원과 분위기 연출까지 보증하지.
뒤늦게 휘말림의 책임을 전가하든지 그러지 않는다면 말이지.
진실해야 돼.
벗음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걸 걱정하지 않고.
청마? 그런 시대가 있었지요.
3
아무리 늦었더라도 아주 늦지는 않았다는 말 있지?
그러니까 늦었다는 말.
그래도 개겨보자는 말.
{“되기야 하겠냐만...” 그러다가 “가만 있자 뭐가 나올 것 같기도...”로.}
김환기, ‘산월’
코촉상 받아 기분이 언짢았는지
아니면 차린 이 형편이 워낙 궁해서 안쓰러웠는지
구시렁거린 것조차 시가 되었다고?
천장이라곤 온통 거미집에다 화로에선 겻불내 나네.
국수 한 사발에 지령-간장- 반 종지... 이게 전부?
후식이라고 내온 강정, 빈사과-유과-, 대추, 복숭아, 그건 어느 잔칫집에서 얻어온 건가?
다가온 워리 사냥개 이놈은 필시 통시-변소-에서 X 핥다 왔기에 구린내 풍기는가봐.
天長去無執 하늘은 높아 잡을 수 없고
花老蝶不來 꽃이 늙으니 나비가 오지 않네.
菊樹寒沙發 국화꽃이 찬 모래밭에 피어
枝影半從池 그림자가 연못에 반쯤 비치네.
江亭貧士過 가난한 선비가 정자 옆을 지나다가
大醉伏松下 술 취하여 소나무 아래 자빠졌네.
月移山影改 달이 옮겨가니 산 그리메 바뀌고
通市求利來 사람은 장거리 나다니며 돈 벌어 오네.
{삐딱하면 재주를 그 정도에서 썩히는 거지.}